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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상징적 역할… 총리·의회에도 권력 쏠림 없이 '균형'

입력
2015.01.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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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개헌 봇물' 발언 때 거론, 정치권·학계 관심 부쩍 늘어

대통령, 각료 임면 등 권한에도 실제 행사하는 경우 찾기 힘들어

지난해 연말 개헌 논란 와중에 이원집정부제를 택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권력 구조가 우리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개헌 봇물' 발언으로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촉발시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오스트리아를 거론하며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이후부터다. 그러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오스트리아의 이원집정부제가 집중 조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1920년 헌법 제정 때부터 의회에 많은 권한이 집중돼 실제로는 의원내각제 국가 형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회와 내각의 심한 견제로 인해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역할이 축소돼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정치인과 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를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비교적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 권력구조"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역할 축소가 두드러져 보이지만 의회와 총리 역시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쏠림현상이 덜하다는 설명이다.

의회 권력과 대통령의 위상

상ㆍ하 양원제를 운영하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의회 중에서도 하원의 힘이 세다. 내각불신임권과 국정 조사권을 비롯해 조약체결 및 주요 공무원임명 동의권 등의 권한이 하원에 부여돼 있어 내치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의회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는 만큼 의회와 내각이 상당히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루고 있는 반면 대통령은 상징적인 지위에 그치고 있다. 지난달 15일 빈에서 만난 볼프강 뮐러 빈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집권당을 이끄는 당 대표가 대통령보다는 총리 자리를 원하는 게 오스트리아 정치의 상징적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도 상당히 폭넓은 권한을 갖고 있다. 총리와 장관에 대한 임명권 및 해임권을 비롯해 하원해산권과 긴급명령선포권, 사면권 등의 권한이 대통령에게 부여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행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스트리아 정치인들은 "대통령 권한이 많은 것과 실제 행사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 ‘장부상 권리’에 불과한 이유는 오스트리아 국정운용의 묘이기도 하다. 권력구조 상에서도 대통령 권한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대통령이 개별 장관을 해임할 때 반드시 총리의 제청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긴급명령의 경우 대통령이 명령을 발동할 경우 의회에 4주안에 명령을 무효화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법률 제정권이 주어져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률안 거부권도 없고, 단지 행정부의 법률 제안 거부권 및 공포를 지연시킬 수 있는 권한만 존재한다. 이를 두고 뮐러 교수는 "권력 남용으로 인한 문제를 컨트롤하기에는 의원내각제가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의회나 내각도 절대 권력행사는 자제

대통령 역할이 상징적인데 그친다고 해서 집권당 대표나 총리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총리의 경우 12개 이상의 관련 부처를 지휘하고 있지만 부처별 장관들과 의견을 교류할 뿐 상명하복 구조가 아니다. 베르너 아몬 국민당 의원은 "집권당에서 배출한 총리가 권력을 갖고 있는다"면서도 "총리나 장관이 사실상 동등한 위치에서 정책 결정을 논의한다"고 말했다.

내각에서 위계적 질서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오스트리아 고유의 연정 시스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연정 파트너인 두 정당이 내각을 나눠 갖는 구조라서 하원에 대해서도 개별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특정 이슈에 대한 내각의 책임 구조도 상당히 자유롭다. 지난해 8월 소득세 인하 및 재산세 도입 문제로 정치권의 공방이 벌어졌을 때도 국민당 소속 재무부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후임으로 다시 국민당 인사가 선출됐다. 하원도 하원의장과 2의장, 3의장 및 정당 대표로 구성된 의장단 협의체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로 운용되고 있다.

여론도 “이원집정부제 아닌 의원내각제”

국민들 역시 이원집정부제보다는 의회 중심의 정치 체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빈 대학 법학과 안드레아스 파허씨는 "민의가 가장 충실하게 반영된 정치 체제가 의회 중심 체제로 전통을 이어 왔고 그 동안 장점이 더 많이 발휘됐다"며 "대통령 권한이 지금보다 확대돼 의회 기능을 제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인츠 피셔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0년 대선에서 여론의 관심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투표율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쏠렸던 것도 대통령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대표적 사례였다.

다만 오스트리아 정치구조를 뒷받침해 온 연정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하나의 변수다. 비교적 안정적인 연정 시스템으로 의회가 제 기능을 하면서 그 동안은 대통령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소수당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균열 현상이 부각한 것이다. 특히 2008년과 2013년 총선을 거치면서 극우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오스트리아 미래연합’ 등이 약진하면서 중도 좌파인 사회당과 중도 우파인 국민당이 번갈아 연정의 중심축 역할을 하던 정치패턴의 변화도 예상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하인츠 피셔(왼쪽) 대통령과 베르너 파이만 총리. 이원집정부제하에서 피셔 대통령은 외치를, 파이만 총리는 내치를 담당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스트리아의 하인츠 피셔(왼쪽) 대통령과 베르너 파이만 총리. 이원집정부제하에서 피셔 대통령은 외치를, 파이만 총리는 내치를 담당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빈=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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