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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도전과 실패를 혁신의 DNA로

입력
2016.09.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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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폐막한 리우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애초 목표했던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고개를 들지 못하던 선수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이들을 향한 실망 섞인 시선도 많이 줄었다. 환한 웃음으로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선수와 패자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바람직한 변화상을 읽을 수 있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대표되는 성숙한 응원문화는 모두의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했던 선수들도 패배를 딛고 일어설 힘을 얻었다.

실패가 약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뜻하지 않은 발견을 뜻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그 좋은 예다. 애초 의도하거나 예측하지 못했지만 진행과정에서 새로운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LCD, 터치스크린 등에 사용되는 전도성 고분자 개발로 200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일본 쓰쿠바대 명예교수의 업적은 보조연구원으로 일하던 한국인 유학생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실험하던 학생이 실험지시서의 단위를 잘못 읽고 촉매제의 양을 1,000배나 많이 넣었는데, 그 결과 예상했던 검정 분말이 아닌 은색 박막이 생성됐고 이것이 전도성 고분자의 시초가 됐다.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세기의 발견으로 이어진 셈이다. 3M의 히트작 ‘포스트잇’도 마찬가지다. 애초 초강력 접착제 개발을 목표로 했던 프로젝트는 신제품의 접착력이 떨어져 실패작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편의성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포스트잇이라는 혁신제품이 빛을 보게 됐다.

세계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변혁을 거듭하고 있다. 자동차만 해도 주행성능과 편의사양 개선 차원을 넘어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며,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 혁신적 기술의 확산은 ‘포켓몬 고’와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존 시장에 안주하며 1등 기업과 제품을 따라가는 전략으로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것이 현실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변화에 대한 대다수 국내 기업들의 준비는 미흡한 수준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시장 경쟁과 기술변화 가속화로 제품ㆍ기술 수명주기가 급속히 단축되고 있지만 대책이 마땅치 않다. 당장 생존을 위한 단기 성과에 매몰되면서 중장기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는 연구개발(R&D)을 찾아보기 힘들다. 긴 안목에서 R&D 경험과 역량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파괴적 혁신을 창출하려는 노력과 투자가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소임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긴 안목으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시장실패를 보완하고 사업화 단계의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도전적 주제와 목표를 설정하고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연구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성실 도전 제도’는 이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조치다. 기획단계에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유의미한 성과가 나왔다면 연구에 성실하게 임했음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그간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글로벌 선두를 추종하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추격형 전략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선두가 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 환경에서는 그간의 R&D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출연연이 시장에 혁신 자원을 공급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실패를 받아들이는 연구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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