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올해 안에 교통정리 예고
건보공단 “진료비 0.8~0.9% 삭감 심평원 허위ㆍ과다 청구 제대로 못 막아 재정누수 원인”
심평원ㆍ의료기관 “건보 재정따라 자의적 심사 우려”
진료비 심사 권한을 둘러싼 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기획재정부가 “연내 보건의료 분야 공공기관의 교통 정리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데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건보 재정 악화가 우려되면서 보험료 누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탓이다.
13일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올해 안에 보건의료, 정책금융, 산업진흥 분야 공공기관의 기능조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기재부는 매년 분야를 선정해 공공기관들의 유사 중복 기능이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능을 통폐합하는 기능조정을 한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 기능이 수술대에 오를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기능조정 대상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진료비 심사 기능 역시 재정 누수 방지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건보 재정 누수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현행 진료비 심사 체계는 ‘진료비를 의료기관에 주는 곳’(건보공단)과 ‘진료비 청구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곳’(심평원)을 분리하고 있다. 1999년 회사별, 지역별로 쪼개져 있던 건보 조합들이 건보공단으로 통합되면서 정부가 이전에는 의료보험연합회에서 맡았던 심사 기능을 건보공단이 아닌 심평원에서 맡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당시 건보공단의 권한 강화를 우려한 의료계의 반발이 한 몫을 했다.
건보공단은 이런 이원화된 체계가 건보재정 누수의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건보 재정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건보공단에 비해 재정 상황에 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심평원이 진료비 심사 기능을 독점하다 보니 일부 의료기관의 진료비 허위ㆍ부당 청구 등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의료기관들이 청구한 진료비에서 심평원이 심사를 통해 삭감하는 금액은 매년 0.8~0.9% 수준. 100만원을 청구하면 8,000~9,000원 가량만 삭감된다. 독일이나 대만은 삭감률이 3% 이상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현지조사에서는 의료기관 10곳 중 7곳 이상에서 부적정 청구 사실이 적발된다. 매년 건보 재정에 5조원이 넘는 국고를 쏟아 붓고 있는 기재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진료비 누수를 막기 위한 심층평가를 진행 중이다.
반면 심평원과 의료기관들은 현행 체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건보공단이 심사 기능을 맡게 되면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건보 재정의 많고 적음에 따라 자의적인 심사를 할 우려가 있다“며 심사의 독립성 훼손 우려를 제기했다. 심평원은 최근 들어 진료비 심사 외에 정책개발과 국제협력 등에 뛰어들며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 있는데, 기재부의 기능조정으로 급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2000년 출범 당시 1,124명에 불과했던 심평원의 임직원 수는 작년 말 2,499명으로 두 배 넘게 불어났다. 이 중 진료비 심사를 담당하는 인원은 20% 정도인 500여명에 불과해 매년 3,000억~4,000억원을 심평원에 부담금 형태로 쏟아 붓고 있는 건보공단으로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불만을 토해 내는 상황이다. 심평원 측은 “정부의 위탁을 받아 실시하는 의료급여나 자동차보험 관련 심사 인력 등을 더하면 전체 심사 당당자는 1,000명이 넘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저출산ㆍ고령화로 중장기적으로 건보 재정 악화는 불가피해 어떤 식으로든 현행 방식을 손 봐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기재부 의뢰로 진행된 연구용역에서도 심평원의 세부적 심사 정보를 건보공단에 넘기는 등 두 기관이 정보를 완전히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지만 의료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변수”라고 전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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