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뇨처리 시설 등을 적법하게 갖추지 않은 축사를 법규에 맞게 정비하려는 정부 정책이 촉박한 시한에도 난항을 겪으면서 수천 곳에 달하는 ‘무허가 축사’가 한꺼번에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자칫 3월부터 ‘축산대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환경부에 따르면 전체 축산 농가 12만6,000여 곳 중 정부가 ‘적법화’ 대상으로 삼고 있는 무허가 축사는 4만6,211곳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대형 축사 1만8,705곳을 ‘1단계 적법화’ 대상으로 정하고 건축법ㆍ가축분뇨법 등에 규정된 요건에 맞도록 축사를 정비해 정식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분뇨처리 시설 등이 미비하거나 가축사육 제한지역을 침범한 축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는 2024년까지 축사 면적에 따라 3단계로 나눠 적법화 정책을 순차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현재 진행 중인 1단계 적법화는 올해 3월24일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무허가 축사에 대해 6개월 사용 중지 및 폐쇄 명령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가축분뇨법 개정안을 2015년 3월24일에 시행하면서 1단계 적법화 대상 축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3년 동안 유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현재 적법화 단계를 밟아 정식 허가를 받은 축사가 4,924곳(26.3%)에 불과할 만큼 진척이 더디다. 적법화가 진행 중인 농가(5,287곳ㆍ28.3%)를 뺀 8,494곳(45.4%)이 여전히 무허가 축사로 남아있는 셈이다. 적법화 절차가 통상 6개월가량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기한 내에 적법화를 끝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적법화가 더딘 이유는 절차의 복잡성 때문이다. 무허가 축사가 건축법과 가축분뇨법을 비롯해 국토계획법, 국유재산법, 농지법, 가축사육제한조례 등 다양한 법에 저촉되는 데다가, 현장에서 적법화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축산ㆍ환경ㆍ건축 등 담당부서에 따라 유권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축사별로 위반 사례가 다양한 상황에서 현장 공무원이 어떻게 법을 유연하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추진 실적이 확연히 갈린다. 예컨대 광주ㆍ대전은 적법화 완료율이 50%가 넘지만 인천은 7%에 불과하다.
농가들은 당국의 소극적인 행정 탓에 적법화 절차를 밟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가축분뇨법 개정안은 2015년 3월 시행(행정처분은 3년 유예)됐지만 적법화 대상을 선별하는 축사 실태조사는 2016년 10월에야 이뤄졌고, 이후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AI)로 홍역을 치르는 통에 축사 개선에 차질을 빚었다는 것이다.
대규모 축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돼지ㆍ닭 농가들은 혐오시설로 민원 대상이 되는 일이 잦아 적법화에 적극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 고양시에서 젖소 40여 마리를 키우는 A씨는 “30년간 문제 없이 축사를 운영해 왔는데 주변 지역에 주거용 건물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적법화를 하려고 해도 관련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축산업계는 이대로 적법화 기한이 만료돼 당국이 행정처분을 단행할 경우 축산업 생산액이 8조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기홍 대한한돈협회 부회장은 “대형 무허가 축사들이 대거 행정처분을 받게 되면 헐값에 가축들을 내놓아야 해 사실상 도산 위기에 몰릴 것”이라며 “이로 인해 국산 자급률이 떨어지고 가격이 치솟아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는 행정처분 유예 기간을 3년 더 연장하는 가축분뇨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가축분뇨법 소관부처 환경부는 이미 3년 유예 기간을 둔 만큼 추가 연장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다만 기한이 지난 후에도 적법화를 진행하고 있는 농가, 적법화 추진 의지가 있는 농가들을 분류해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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