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 비행하다 수직 낙하
조종사, 정면 충돌 피하려 한 듯"
인근에 학교도… 대형 참사 모면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유실물 수색작업 지원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소방헬기가 광주 도심에 추락해 탑승자 5명이 모두 숨졌다. 헬기 추락지점 주변엔 17~23층짜리 고층 아파트 6개 동과 중학교, 상가 등이 밀집해 있어 자칫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했지만 추락 직전 조종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아파트 등과의 충돌을 모면한 것으로 추정된다.
17일 오전 10시53분쯤 광주 광산구 장덕동 G아파트 신축 공사현장 인근 상공. “팍팍팍팍…” 강원소방본부 제1항공대 소속 헬기(14인승)가 갑자기 굉음을 토해내며 건축 중인 아파트 위를 스치듯 날아들었다. 아파트 20층 높이에서 저공비행을 하던 헬기는 인근 공사현장 타워크레인 쪽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이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인근 B아파트 206동과 불과 10m 가량 떨어진 왕복 5차선 도로변 인도와 접한 완충녹지대에 추락한 헬기는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추락지점에서 7.5㎞ 가량 떨어진 공군비행장에서 이륙한 지 4분 만이었다.
이 사고로 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정성철(52) 소방경, 조종사 박인돈(50) 소방위, 정비사 안병국(39) 소방장, 구조대원 신영룡(42) 소방교, 구조대원 이은교(31) 소방사 등 5명이 숨졌다. 또 버스승강장에 있던 여고생 박모(18)양도 파편에 맞아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헬기 탑승자들은 지난 14일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에서 헬기를 이용한 유류품 수색작업 지원활동을 벌여왔다. 이들은 이날도 마지막 지원활동에 나갈 계획이었지만 기상악화로 인해 현장 진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 지원계획을 취소하고 오전 10시49분 공군비행장을 이륙해 춘천으로 복귀하던 중이었다.
G아파트 공사현장 작업자 김형곤(54)씨는 “헬기가 오토바이 소음기 터지는 소리를 내며 추락지점 서쪽에 위치한 G아파트 공사현장 건물을 가까스로 피하면서 날아왔다”며 “이어 헬기가 동쪽의 B아파트와 아파트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을 정면 충돌하듯 다가오다 갑자기 수직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아 조종사가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헬기 조종사가 굉음이 발생하는 등 이상징후를 보인 헬기를 몰다가 G아파트 앞에서 아파트를 스치듯 기체를 틀었으나 이어 B아파트 단지(449가구)가 나타나자 충돌을 피하려 수직 하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추락 지점에서 20여m 떨어진 곳엔 S중학교(학생 수 1,360명)가 있어 조종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학교와의 충돌을 막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수업 중이었던 학교에 헬기가 추락했을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은 헬기의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의 조종미숙, 기상악화 영향 등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추락 경위를 조사 중이다. 당시 관제를 담당했던 공군 제1전투비행단은 추락 1분 전 저공비행 사실을 확인하고 기수를 올리라고 지시했고 사고 헬기의 고도가 올랐다가 곧바로 다시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기체 결함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사고 헬기는 세월호 참사 이후 4차례 현장에 투입됐으며, 지난 6일 정비 당시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01년 4월 프랑스 유로콥터에서 제조돼 같은 해 8월 구조ㆍ구급용으로 배치된 헬기여서 노후 헬기도 아니라고 소방방재청은 밝혔다. 소방헬기의 사용연한은 평균 20년이다.
또 사고 당시 추락지점인 광산구 수완지구엔 시간 당 4.5㎜의 비가 내렸지만 시정은 11㎞, 순간 최대풍속 초속 1.5㎙, 최저 운고(雲高)도 800m로 관측돼 기상상태는 양호했다. 소방헬기의 경우 수평시정이 1.5㎞ 이하이거나 운고가 150m 이하일 경우엔 비행이 금지된다.
사고 원인 규명에는 블랙박스 분석이 결정적이지만 사고 당시 동체가 불에 타 블랙박스가 손상됐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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