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이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에 의해 단독으로 처리됐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의원들은 여당의 단독처리 강행에 항의해 임명동의 반대토론만 하고 전원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2012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래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의한 의안 단독처리는 처음이다.
박 대법관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00일 만에 가결돼 신영철 전 대법관 퇴임 후 83일 동안 이어져온 대법관 장기공백상태는 일단 해소됐다. 그러나 전력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극심했던 박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단독처리는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논란과 절차상 하자를 안고 임명된 그가 사법정의와 인권수호 최후 보루인 대법원에서 대법관으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는 향후 국회운영과 관련해서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우선 이 사안이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에 맞는지부터 논란거리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등으로 제한해 놓고 있다.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 등 인사에 관한 사항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임명동의안 처리 지연에 의한 대법관 공백상태 장기화 부담이 컸겠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국회법 위반이자 여야 합의정신에 어긋나는 처사다.
이런 식으로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국회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걸핏하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의안처리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없지 않으나 그간 물리적 충돌 없이 여야 합의에 의한 의안처리 장치로 기능해온 게 사실이다. 이번 사태는 국회선진화법의 그런 역할에 타격을 줬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의 전략부재와 졸속대응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새정치연합은 우여곡절 끝에 박 후보자에 대한 국회인사청문회가 열렸을 때 여러 의혹과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낙마시킬 만한 결정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표결로 반대하는 수순을 택하는 게 현명했다. 결과적으로 임명동의안 가결을 저지하지도 못하고,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의한 여당 단독 의안처리의 선례만 남기게 됐다. 게도 구럭도 잃은 꼴이다. 야당은 막연한 명분에 집착해 중요한 실리를 놓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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