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기고] 대통령 개헌안 ‘경제 조항’ 변화에 주목한다

알림

[기고] 대통령 개헌안 ‘경제 조항’ 변화에 주목한다

입력
2018.03.28 16:02
29면
0 0

권력구조 개편을 둘러싼 정치권의 개헌 논쟁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돌이켜 볼 때 마땅한 대선주자를 낼 수 없는 정당은 언제나 내각제 카드를 꺼냈다. 1957년 이승만이 3선에 성공한 후 뒤를 이을 마땅한 후보가 없던 자유당은 4월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줄기차게 ‘내각제 개헌’을 주장했다. 1980년대 중반 전두환의 후계자가 불확실했던 민주정의당 역시 ‘내각제 개헌’을 외쳤다. 그리고 촛불혁명이 절정이던 작년 초, 자유한국당은 “국회 선출 총리로 개헌하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편다.

어쨌든 권력구조 개편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이 먹고 사는 일에 헌법이 얼마나 보탬이 되는가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통령 개헌안은 경제 관련 조항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키워드를 담고 있다.

‘토지 공개념’과 ‘소상공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토지공개념을 두고는 이미 논란이 뜨겁고, ‘사회주의 개헌’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정말로 그런지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8년 제헌헌법에는 “농지 개혁을 통해 소작제도를 혁파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조선 중기부터 약 400여 년을 이어온 지주의 토지 점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조항인데, 이듬해인 1949년 농지개혁법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때 마련된 조항은 현행 헌법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농지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달성해야 하며 소작제도는 금지한다’(헌법 121조 1항)는 것이다. 사실상 이번에 삽입된 ‘토지공개념’은 농업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 했던 제헌헌법의 정신을, 산업사회의 건물주나 부동산 같은 새로운 문제에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즉, 대한민국 헌정사의 정신이 시대 환경에 따라 재조정되었을 뿐이다. 토지공개념에 대한 열망은 현행 헌법 전문이 오랫동안 강조한 ‘유구한 민족전통’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조선 후기 정약용은 정전제와 여전론을 설파하면서 토지 공공성을 강조하였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시기 정도전의 역성혁명 역시 ‘과전법’이라는 개혁, 즉 권문세족의 점탈로 송곳 꽂을 땅도 없었던 백성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했던 ‘토지공개념’적 실천이었다.

‘소상공인’이라는 말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행헌법상 국가가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산업주체는 중소기업이나 농ㆍ어민이다. 현행헌법은 명문으로는 자영업자, 비정규직, 프리랜서 같은 새로운 산업 종사자에 대한 근본적 보호를 빠뜨렸다. 왜 그랬을까. 1987년 개헌 당시만 해도 완전고용 수준의 경제 상황이었고, ‘학교를 졸업하면 회사에 다닌다’는 단순한 공식이 통용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경제 조항은 최저임금제, 노동3권 그리고 복지제도 확충에 집중됐다. 현재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이 조항들은 사실상 회사를 다니는 정규직을 전제로 한 조항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출몰한 신자유주의, 첨단 산업구조로의 변형 등은 당시엔 고려할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국가는 헌법을 근거로 법률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국가기구 및 관련 예산을 운용한다. 따라서 소상공인이라는 단어가 헌법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욱 급격하게 변화할 대한민국의 산업구조에 대한 중요한 기본적 대비책의 마련을 일깨운다.

경제 관련 조항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다른 조항에서는 ‘국민’에서 ‘사람’으로 권리주체를 바꾼 것과 달리 경제 조항만은 여전히 1970년대에나 강조되던 ‘국가’라는 주어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번 대통령 개헌안을 보는 눈길이 권력구조 개편에만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정치인들의 싸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 토지공개념이나 소상공인 같은 피부에 와 닿는 주제를 놓고 국민 스스로 개헌 담론을 이끌어가야 할 때다. 정치인들의 주장과 협상에 기대는 게 아니라 국민 스스로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헌법의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헌법의 상상력’ 저자)

심용환 작가
심용환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