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관련 산재 신청 5년새 2배
40대 초반 김모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과장이라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영업지원 파트에서 주간 단위 집계와 보고, 실적 관리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같은 팀 동료 한 명이 일을 그만두기까지 김씨의 지상목표는 승진과 성공뿐이었다. 그러나 충원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매일 저녁 9시 근처였던 퇴근시간은 11시, 12시로 늦춰지기 일쑤였다. 휴일에도 회사에 불려나가는 일이 더 잦아졌지만 승진을 앞둔 상황이라 김씨는 ‘조금만 더 버티자’고 이를 악물었다. 근 두 달 동안 두 사람 몫의 업무를 떠맡다시피 하다 보니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다. 참다 못한 김씨는 상사에게 간곡히 충원을 얘기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좀 더 견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던 중 가슴 통증과 소화불량, 만성 두통 등 신체적인 변화가 왔다. 신경도 급격히 예민해져 짜증내기 일쑤였고 실수가 잦아졌다. 의욕도 사라져 야근을 해도 진척이 없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충동과 불면에 시달리던 김씨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정신과를 찾았다.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감이 커진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약물과 상담치료를 병행하던 김씨는 사표를 던질 각오를 하고 병가를 내 2주 요양을 했다. 그는 “승진 욕심에 버티다 심신이 다 타버린 것 같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광고 카피가 지난해 크게 유행했다. 과도한 업무 부담과 돌연한 슬럼프 등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타버리다는 뜻 그대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탈진 상태를 뜻하는 번아웃은 극도의 피로감과 의욕상실, 우울증 등의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권태나 무기력증은 일반적인 우울증 증상과 비슷하지만 일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 등 노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띄기 때문에 구별된다.
장시간 근로, 고용불안이나 성과 강요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등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만 강요할 뿐 회사도 부정적 영향에 대한 인식이 없다. 그러니 상황은 날로 악화된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업무 관련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 관련 산업재해 신청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105건(승인 47건)에 달했다. 2011년 102건(승인 26건)에서 최근 5년 간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늘었다.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번아웃 증후군은 눈에 보이는 산업재해가 아니기 때문에 그 동안 개인의 무능력이나 근무태만으로 치부된 측면이 크다”며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정신질환 관련 산업재해 신청건수 *()안은 사망자
<자료: 근로복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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