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 이주일(64)연예계 어제와 오늘
알림

[나의 이력서] 이주일(64)연예계 어제와 오늘

입력
2002.06.13 00:00
0 0

지난달 중순 모 방송사 제작진이 취재차 분당 집을 찾아왔다.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근황을 정중히 묻고 싶다고 해서 취재를 허락했는데, 리포터를 맡은 개그맨 후배 놈이 자꾸 까불었다.

실실 웃으면서 “제일 웃기셨을 때가 언제입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환자 앞에서 개그를 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리 가까이 오라고 했다. 후배 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네가 그 말 하는 게 PD가 시킨 거냐, 작가가 쓴 거냐, 아니면 네가 알아서 한 것이냐?” 그랬더니 후배 놈은 “제가 개그맨이니까 좀 튀어보려고 그런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놈 뺨을 후려갈겼다. “지금 환자 갖고 장난치는 거야?”라고 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AD에게 “이 방송 나가면 생방송 중에 찾아가 쑥대밭을 만들어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것이 요즘 연예계 풍토이다. 진정한 마음에서 병문안을 오는 게 아니라 나를 이용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찾아온다.

후배도 선배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찾아와서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척 하다가도 얼마 안 있으면 본심을 드러낸다.

유명한 후배 가수 한 명은 얼마 전 병실에 와서 이 얘기 저 얘기 정겹게 하더니 며칠 후 모 신문에 ‘내가 만난 이주일’ 이런 식으로 대문짝만하게 글을 썼다.

전에는 정말 안 그랬다. 연예계가 아무리 겉으로는 막 가는 동네처럼 보여도 그 속에는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다.

지금처럼 선후배도 없는 그런 난장판이 아니었다. 더욱이 누구에게 경조사가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찾아와 밤새우는 것은 보통이었다.

지금처럼 방송사 취재진을 끼고 병문안을 찾아오는 그런 후배들은 없었다.

연예계가 이처럼 돼 버린 것은 물론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한번 스타가 되려면 최소 10년은 고생을 해야 했는데 요즘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제작자 눈에만 잘 띄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전에는 극단이나 방송사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니 나도 스타가 된 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말 온갖 노력을 다 했다.

요즘 후배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다 보면 가난했지만 훈훈했던 옛날 생각이 자꾸 난다.

그 중 첫번째가 누구보다 후배들을 아끼고 보살폈던 고 서영춘(徐永春) 선배이다. 체격과는 달리 호탕하고 리더십이 강했던 분이다.

오랜 유랑극단 생활에서 설움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후배만큼은 알뜰히 챙겨줬다. 그러면서 당신 자신은 소주를 사이다 잔에 따라 마시면서 그 한과 설움을 달랬다.

1970년대 초 서 선배를 따라 지방 순회공연을 다니던 때의 일이다. 당시 후배들은 서 선배와 공연을 가면 신바람부터 났다.

허기진 배에 기름기가 돌 만큼 시원하게 회식을 시켜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가 “야, 가자!”라며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극장 문을 나설 때면 후배 코미디언은 물론 밴드 단원, 기술 스태프까지 따라 나설 정도였다.

부산 공연이 있던 어느날. 서 선배가 부산 영도와 해운대에 와있던 다른 3, 4개 유랑극단의 사회자를 모두 집합시켰다. 15명 정도 모였는데 “고생이 많다”며 자갈치 시장에 데리고 가 회에다 소주를 사줬다.

속칭 완월동(충무동) 사창가에 데려가서는 “알아서 잘 모셔. 이 나라에서 최고 일인자들이야”라며 이름도 없는 우리들을 치켜세웠다.

2년 전 서 선배 동상 제막식 때 몸이 아파 못 간 것이 한스럽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