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69ㆍ사진)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남겼다. “방향은 옳지만, 하루 아침에 실현되기 힘든 일을 단숨에 이뤄야 한다는 성급함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비판했던 이 교수는 학계에서 진보 성향 경제학자로 분류된다.
이 교수는 28일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분배상태가 더욱 악화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며 “사실 1년 남짓 시행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이렇다 할 분배상의 개선효과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분석했다. 그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조금이라도 나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현 정부가 경제를 망쳐버렸다고 떠들어 댄다”며 “그러나 아직은 그런 식으로 평가할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방향 자체는 옳다고 평가했다. 다만 방향이 옳다고 해서 무조건 지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재벌 개혁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 “하루 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라면서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을까”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먼저 최저임금을 예로 들었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소득층의 고용과 소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경제학자들도 사전에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올려가는 과정에서 신중하게 모니터할 필요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근거 없는 우려라고 일축해 버릴 수는 없다”며 “그런 우려에 분명 일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문재인 정부의 나머지 핵심 정책도 언급하면서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려 하지 말고, 핵심적인 부분을 개혁하는 작업부터 하나씩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자신이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시장근본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시장이 중심이 돼 움직이는 경제인 만큼 무리하게 시장을 억누르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너무 성급한 자세는 정부 혼자 독주하겠다는 자세로 읽혀지기 때문에 불안감을 준다”며 “방향만 옳다고, 좋은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국내 경제학계 원로로 평가 받는 이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68학번)를 졸업한 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해 2015년까지 교단에 섰다. 저서로는 ‘미시경제학’, ‘경제학원론’, ‘재정학’, ‘인간의 경제학’ 등이 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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