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위법 여부 따진 뒤 진상조사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현대건설이 안전수칙을 어겼다는 명목으로 자사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퇴출자 명단’을 작성ㆍ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계에선 회사가 취업을 제한하려는 의도로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으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법 위반 여부를 따져 진상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14일 현대건설과 전국플랜트건설노조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2011년부터 4년간 3,000명에 달하는 ‘안전수칙위반 퇴출자 명단’을 작성해 왔다. 명단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이름과 소속 업체명, 주민번호, 퇴출된 작업현장 및 일자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안전수칙위반’ 내용은 대부분 안전모나 안전벨트 미착용, 음주 후 작업 등이었다. 각 노동자들의 산재처리 여부도 기재돼 있었다. 현대건설은 이들에 대해 자사 건설현장 출입을 막고 있다.
플랜트노조는 다른 업체에서 받은 정보가 기재된 해당 명단은 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2013년 5월 퇴출된 A씨에 대해 ‘타현장 산재보험 경력자(D건설)’라는 참고 사항이 표기돼 있다. 근로기준법 40조는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 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취업 방해를 목적으로 통신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도 있다. 김기덕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변호사는 “원청인 현대건설이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개별 동의를 받지 않고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수집한 것은 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산재발생건수가 늘어날 경우 건설회사가 관급공사 입찰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현대건설이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 개별 노동자의 산재신청 여부를 표기한 것으로 의심한다.
이영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정책실장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현대건설의 명단에 오르면 다른 건설사 취업에도 길이 막혀 사실상 해당 노동자는 사형선고를 받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플랜트노조는 16일 오전 서울 계동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명단 작성 근절 방안을 요구할 계획이다.
현대건설은 명단 작성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일용직 노동자의 퇴출이 아닌 안전사고 예방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음주 후 작업 등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줄 때 바로 현장에서 퇴출되는 ‘원 아웃’부터, 두 번 경고 후 세 번째 적발 시 퇴출되는 ‘쓰리 아웃’까지 운영하고 있다”며 “매달 본사에서 4시간 동안 교육프로그램을 들으면 얼마든지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재처리 요구자 리스트를 별도 관리한 점에 대해서는 “사고 예방 차원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측은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의도를 면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취업제한 목적으로 작성했는지를 우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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