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기자

등록 : 2018.07.13 09:00
수정 : 2018.07.13 15:58

[삶도] “마음이 지옥인 사람을 돕는 사람은 누가 돕나요”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11>심리기획자 이명수

등록 : 2018.07.13 09:00
수정 : 2018.07.13 15:58

“돕돕재단, 사회의 심리적 안전망 회복에 필요”

정신과전문의인 아내 정혜신씨와 ‘치유의 전투’

세월호가족, 고문피해자, 쌍용차해고자와 함께 해

“문 대통령 위로의 리더십, 핵폭탄급 치유력 가져”

심리기획자 이명수씨. 그는 정신과전문의인 아내 정혜신씨와 2006년부터 고문피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의 치유를 도왔다. 김주성 기자

‘관식아, 고맙다. 네가 도와서 아저씨가 살았나 보다.’

그의 표현대로 ‘저기’(저승)에서 찰나를 머물고 다시 ‘여기’(이승)에 온전히 발을 디뎠다고 느꼈을 때, 관식이가 떠올랐다.지난 5월 8일 아침.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심근경색과 심 정지는 까닭 모를 일이었다. 평소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데다 어떤 전조도 없었다.

왜 저기에 갔는지는 알 수 없어도 어떻게 기적처럼 여기에 올 수 있었는지, 심리기획자 이명수(59)씨는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중이다. 거기에 관식이가 있다. 관식이는 11년 전 5월,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갔다가 엄마 품을 영영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엄마에게는 잇단 혈육의 죽음 뒤 찾아온 감당하기 힘든 생이별이었다. 이명수씨가 관식이 엄마를 만난 건 ‘치유공간 이웃’에서다. ‘이웃’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고, 그 가족의 마음을 보듬으려 정신과전문의인 아내 정혜신씨와 함께 만든 곳이다.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지녔으면서, 세월호 가족을 돕겠다며 그녀가 왔던 것이다. 그저 숨만 잇고 있을 정도로 마음을 앓던 그녀를 살리려고 그때부터 부부는 온 힘을 쏟았다. “아기 어루만지듯 마음을 만져준 거죠. 함께 얘기를 나누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울고…. 3년 간 그렇게 마음을 주고 받았죠.” 나중에 관식이 엄마가 말했다. “두 분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고.

그런데 심장이 다시 뛰는구나 느낀 순간, 관식이가 생각난 거다. 아내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맞아, 관식이가 도왔을 거야. 살아서 자기 엄마를 도우라고.”

몸을 회복하자마자, 이명수씨 부부의 첫 외출은 그래서 관식이가 있는 추모공원이었다. “가서 그랬어요. ‘관식아, 고맙다. 다시 건강해져서 엄마 잘 돌볼게’라고.”

관식이 뿐이랴. 이 부부가 지난 십 수년 간 치유에 매달렸던 고문 피해자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의 마음들이 어쩌면 그의 쾌유를 기원했을 테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며, 실존의 이유가 될 만큼 강력하다. 이명수씨가 자신이 하는 일을 ‘심리기획자’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심리기획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물어요. 뭐 하는 사람이냐고. 저는 그럼 이렇게 말해주죠. 나한테도, 상대한테도 마음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을 한다고.”

마음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명수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당대의 치유자’라고 부른다. 마음의 존재를 아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억울한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죠. 그 집중 만으로도 유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이 안도할 수 있어요.”

수많은 죽어가는 마음들을 살려내 본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전투의 현장에서 함께 피눈물을 흘려본 이라야 판단이 가능한 일이다. 그 전장에 고문 피해자들이 있었고,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있었고, 세월호의 엄마ㆍ아빠들이 있었다. 왜 그와 그의 아내는 전사를 자처했을까. 남을 살리는 얘기인 줄 알았더니, 그건 처절한 생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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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현장서 느낀 눈물과 기원의 힘

갑작스런 심 정지 사건으로 새삼 체감해

두 달 전인 5월 8일 갑작스레 발병한 심근경색과 이후 치유 과정에서 이명수씨는 ‘이웃치유자’들의 간절한 기도의 힘을 체감했다. 그것은 자신이 앞서 수많은 ‘트라우마 현장’에서 깨달은 진리였다. 김주성 기자

-심 정지를 겪었던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렸죠. ‘여기’에서 ‘저기’를 다녀왔다고요.

“20일 만에 (체중이) 7㎏ 빠졌어요. 가만히 병원에 누워있기만 했는데, 내 안의 장기들은 (회복하려고) 무슨 일을 계속 열심히 했던 모양이에요. 2, 3일은 집중치료실이라고 중환자실 같은 곳에 있었죠. 심장 하나 살리려고 약을 워낙 많이 퍼부으니, 60~70 정도가 정상이라는 간수치(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지표)가 측정할 수 있는 최고치인 1,000까지 올라가더라고요.”

지금은 빠졌던 몸무게 중 6㎏이 돌아왔다. 몸 상태가 복구된 정도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그날 아침 부부는 차를 마시며 여느 때처럼 농담을 주고 받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구급차를 탈 때까지는 힘들지만 제 발을 땅에 디딜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뒤 심 정지가 온 것이다. 아내 정혜신씨와 4개월 차 신참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했고, 그 사생결단의 치열함이 그를 다시 살렸다. 이어 도착한 대학병원에서 스텐트 삽입시술을 했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세 개 중 좌측 관상동맥이 통째로 막혔던 거였다. 무미건조한 몇 글자로는 전달되지 않는 전투였다. “눈을 뜨면 (아내는) 어김없이 입맞춤을 하고 볼을 비비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금방 괜찮아져요’, ‘머리를 짧게 정리한지 얼마 안돼서 지금도 멋져요’ 라고 말했다.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들을 들으며 내가 최소한 잘못되지는 않겠구나 예감했다”고 그는 페이스북에 적었다. 그 때의 아내는 ‘너는 내가 꼭 살려내고 지켜낸다’는 믿음을 주는 다정한 전사였다고.

-왜 갑자기 심근경색이 왔을까요?

“전조랄 만한 게 없었어요. 술, 담배는 않고 스트레스도 없는 삶이고. 추론해볼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이 가족력이죠. 50년 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거든요.”

-이 일이 준 의미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그간 늘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만큼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어요. 아내와도 항상 ‘여한이 있어?’, ‘없어’, ‘나도 그래’라는 대화를 나눌 만큼. 의미를 찾자면 이 일로 10여 년 간 ‘트라우마 현장’에 다니면서 느낀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을 내가 실제 경험했다는 사실이죠. 기도와 눈물이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되는지.”

-‘트라우마 현장’이란 어떤 곳을 말하나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세월호 트라우마의 치유와 관련한) 강의를 했죠. 전국 방방곡곡 수백 곳에, 차를 바꿔야 할 만큼 다녔어요. 세월호 가족의 얘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또 이걸 들은 이들이 함께 울면서 뭐라도 돕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다시 세월호 가족들에게 에너지처럼 전하는 거죠. 실제 가족들은 이걸 받으면서 치유되고 안심이 되는 느낌을 가져요. 그러니 그런 기도나 간절한 기원의 힘에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직접 실감을 한 거예요. ‘앞으로 사는 동안에도 이 경험이 막강한 에너지원이 되겠구나’ 느꼈죠.”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겼죠. 그 중 하나는, 나라는 개인의 안위에 이 공동체는 관심이 없다는 불안일 거예요.

“우리나라는 사회 안전망이 너무 없지요. 살다 보면 지옥에 가는 때가 있거든요.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요. 그런데 안전망이 튼튼하면 지옥에 빠지더라도 다시 나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통 한번 떨어지면 나올 방법이 없지요. 심리적인 지옥에 빠졌을 때 다시 올라오는 방법은 집단이, 사회가, 그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거예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시스템이 가장 완벽한 사회 안전망이에요.”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고문 피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하셨지요?

“2006년 평소 아주 가깝게 지내는 후배 송소연(재단법인 진실의힘 상임이사ㆍ당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한테 연락이 왔어요. (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 선생님들을 도울 방법이 없겠느냐고요. 그래서 명진 스님이 주지였던 봉은사에서 매주 아내와 그들을 만나 상담을 했지요. 2011년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심리치유를 돕는 ‘와락’을 만들었고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엔 아예 안산으로 이주했죠.”

정혜신씨는 한 때 방송에도 자주 나오던, 잘 나가는 정신과전문의였지만 병원 진료를 아예 접은 지 오래다. 2004년엔 남편 이명수씨와 함께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부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마저도 정리하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왜 그 현장에 간 건가요?

“우리가 살려고 간 거죠. 정혜신씨가 불도저 같은 구석이 있어요. 저는 되레 그의 뒷덜미를 잡는 역할을 하죠. 쌍용차 문제로 14번 째 희생자가 나왔을 때 가족의 사연을 들은 아내가 ‘명수씨, 나 저기 가야 되겠어’라고 했지요.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팽목항에 먼저 간 건 아내였어요. 이틀쯤 머물다 왔는데, 아내가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에 시달렸어요. 새벽 2, 3시에 이상해서 눈을 떠보면 옆에서 울고 있고, 자다가도 팔, 다리를 떨고요. 아이들이 꿈에 나타나서 ‘우리 엄마, 아빠, 동생 잘 돌봐주세요’라고 한다는 거예요. 얘기를 하는 아내도, 저도 울었죠. ‘그러면 우리가 사는 방법은 거기로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한 거예요.”

그 길로 경기 안산시로 내려가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었고, 2년을 살았다. 거기서 치른 전투를 그는 ‘무간지옥’이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그리고 한동안 세월호 참사의 고통으로 얽히고 설킨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억울함, 분노, 죄의식을 설명했다. 기사라는 공개적인 글엔 다 담지 못하는 곡절이다. 극히 일부였는데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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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곧 치유의 힘’… ‘이웃’의 치유밥상

놋쇠 수저, 기도로 구운 그릇에 각상으로

“돕는 사람 돕는 ‘뒷배시스템’ 만들어야”

세월호 엄마들이 나무를 깎아 만든 리본. 이명수·정혜신 부부는 세월호 참사 뒤 아예 경기 안산시로 터를 옮겨 2년을 살며 ‘치유공간 이웃’에서 그들과 함께 했다. 김주성 기자

-‘치유공간 이웃’을 운영하는 건 경제적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텐데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받지도 않았고, 공개적인 모금을 한 적도 없어요. 대신 우리의 활동을 믿어주는 가까운 이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았지요.”

-왜 그런 방식을 택한 건가요?

“우리가 나름대로 정한 치유의 원리가 있어요. 밥이 치유의 힘이라는, 그리고 그 밥은 우리 돈으로 해결하자고. ‘이웃’은 1년이면 밥값이 수 천 만원이 들었어요. ‘치유밥상’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일일이 각상으로요. 그리고 명인들이 만든 놋쇠 수저를 놓고, 도예가한테 (희생된) 아이들 250명의 이름을 적어 주고 그가 하나하나 기도하면서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넣어서 구운 그릇에 밥을 차렸어요. 그들을 귀히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청와대 근처) 청운동, 팽목항, 광화문 이런 데에서 (진실 규명 시위를 했다가) 공권력에 의해 내팽개쳐진 엄마들이 왔을 때 정성스럽게 차려서 먹였어요. 그걸 받은 엄마들이 우리를 붙잡고 울었죠. 그럼 우리는 그랬어요. ‘그 (밥) 힘으로 나가서 싸우세요.’ 그게 ‘이웃’의 역할이고 밥의 힘이에요. 절대 식판 따위에 밥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정부나 지자체 예산을 받으면 감사를 받아야 하잖아요. 밥값이 1년에 몇 천 만원이라고 하면, ‘대체 뭐 하는 거냐’고 그러지 않겠어요?”

-심 정지 사건의 치유 과정에서 ‘나 역시 공동체에서 받은 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나요?

“지금 예순인데, 10년 전부터 ‘음덕’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와 닿더라고요. 40대까지는 내가 잘나서, 똑똑해서, 능력이 있으니까 성취를 이룬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란 것을 그때부터 뼈저리게 알게 됐죠. 정혜신으로 대표되는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이 곁에 있지만, 주위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제 목숨을 구해줬다고 생각해요. (15년 단골 방앗간에서 찧은 유기농 곡물로 만든) 미숫가루를 들고 하나하나 찾아 다니면서 인사를 할 거예요. 가까운 친구, 선후배, 얼굴도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기원의 댓글을 달아준 사람까지. 그 중엔 병원에 면회를 왔다가 그냥 발길을 돌렸던 이들도 있고, 어서 회복하라며 ‘연예인 조공’ 수준으로 자신이 보낼 수 있는 것들을 보내준 이들도 있어요. 그들이 나한테는 굉장한 치유자인 거죠.”

-세월호 참사로 무너진 우리 사회의 신뢰, 믿음의 안전망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정혜신씨와 생각하는 것은 ‘뒷배시스템’이죠.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돕돕재단’을 만드는 일이에요. 돕는 사람을 돕는 재단. 우리는 그들을 ‘이웃치유자’라고 불러요. 실은 세월호 가족들은 전문가가 아니라 그 분들이 살렸어요. 함께 아이 사진을 보면서 얘기를 들어주고, 몸을 마사지 해주고, 울어준 자원활동가들이죠. 그런 뒷배들을 우리(사회)가 잘 돌봐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죠. 그래서 소방관, 119구급대원, 사회복지사 같은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을 돕는 재단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이들을 돕는 뒷배들이 많아지면 이 사회의 안전판이 굉장히 단단해질 수 있죠.”

-무너진 사회의 안전망을 복구하는 데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잇단 위로의 리더십을 어떻게 보세요?

“저는 ‘문재인은 당대의 치유자다’라고 생각해요. 제가 정혜신을 가리켜 늘 ‘당대 최고의 치유자’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문 대통령은 상징성과 영향력이 크니까 ‘당대의 치유자’라는 거죠.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희생자의 딸에게 다가가 안아주는 그 순간,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다 자기가 위로 받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최고지도자가 그런 행위를 한 것은 거의 핵폭탄급 치유력이 있죠. 문 대통령은 그런 품성이 능력인 사람이지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하기까지 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먼저 문 대통령을 만난 김여정(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북에 가서 오빠(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신이 느낀 그대로 얘기했을 것 아니냔 거죠.”

-지금 이 시기, 당대에 그런 리더십이 왜 필요하다고 보세요?

“치유의 영역에서 가장 사람을 뒤틀리게 하는 게 억울함이에요. 억울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억울하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분노가 과격하게 표출되기도 하지요. 문 대통령의 가장 큰 강점은 억울한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주는 느낌을 갖게 하는 거죠.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만, 유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동시에 안도해요. 엄청난 치유의 느낌이죠. (일각에서) ‘쇼’라고 (비난)할 지라도 얼마든지 더 해도 좋은 일이에요. 어디 문 대통령뿐인가요? 김정숙 여사까지, 가히 ‘부부치유단’이죠. 우리는 그간 사회적으로 상처가 엄청나게 쌓였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 100년 정도는 그런 치유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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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기획, 마음의 존재를 보이는 일”

“대한항공ㆍ아시아나 총수 일가 갑질…

직원을 개별적 존재로 인정 않기 때문”

이명수씨를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이곳을 ‘놀이터 같은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서 아내 정혜신씨와 함께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김주성 기자

-스스로를 ‘심리기획자’라고 하는데, 어떤 뜻인가요?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죠. 나한테도, 상대한테도 마음이 있다는 걸 알면 함부로 하지 않아요. 나 역시 심리 치유에 관련된 일을 하고부터는 개별적 존재에 집중하게 됐죠. 이를테면, 병원에 가면 늘 싸우게 마련이에요. 사람을 개별적으로 취급해주지 않거든요. 언젠가 치과에 갔는데 나를 먼저 의자에 뉘이더니 플래시를 켜두고는 입을 벌린 채 있으라고 하더군요. 의사가 금방 오는 줄 알았더니 기다려도 안 와요. 간호사를 불러서 일으켜 세워달라고 한 뒤에 왜 이렇게 기다리라고 하는 거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빨리 진료를 하려고 그런 거래요. 의사가 왔기에 같은 자세로 누워보라고 했어요. 그러곤 눈은 부시고 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야 하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했죠. 의사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도 중요하다, 환자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어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에서 왜 그런 일(갑질)이 벌어지겠어요? 직원들을 개별적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죠.”

맞다. 살면서 우리는 마음을, 얼마나 강제로 상실 당하고 있나. 회장님 앞에서 장미를 든 채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를 불러야 했던 승무원 연수생들, 자신의 마음보다 지사님의 심기가 늘 우선이어야 했던 비서 김지은씨, 드라마 촬영보다 갑님들의 성접대 자리에 더 몰두해야 했던 장자연씨… 이들은 모두 마음을 사살 당했다. 세월호의 부모들은 마음에 제대로 자식을 묻지도 못한 채 아직도 지옥을 살고 있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언론 앞에서 “세월호 참사가 작년인가요, 재작년인가요”라고 했다. 3주기가 되는 해였으니, 작년도, 재작년도 아니었다. 새삼스럽지만, 그의 머릿속에도 마음속에도 세월호는 없었던 거다.

-언제부터 ‘마음’에 관심을 두게 됐나요?

“그 전부터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를 많이 했지만, 정혜신씨를 만나면서 업으로 삼게 됐죠. 경영학과를 나왔으니 관련 학위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 이상의 공부를 했다고 생각해요. 정혜신씨가 저를 스승이라고 할 정도로. 자격증도 없지만, 상담은 체질에 맞지 않기도 해요. 정혜신씨가 의사로서 전장에 나가 싸운다면, 저는 뒷배시스템 같은 인프라를 만들죠. 정혜신씨는 아무리 험한 트라우마 현장에 가도 기어코 해내요. 당대 최고의 치유자죠. 14, 15년 전 병원도 아예 접고 ‘거리의 의사, ‘거리의 치유자’로 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래요. 비유를 하자면 뼈가 다 으스러져서 들것에 실려서 (상담실에) 들어간 사람이 두어 시간 뒤에는 어기적 거리지만 자기 힘으로 나온다고. 대체 (상담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도, 정혜신을 만나면 살아나요.”

-지금까지 생을 나눠본다면요.

“서른까지는 참 나쁜 사람이었어요. ‘칼’이었죠.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는 황지우 시인의 시구(‘뼈아픈 후회’)처럼, 지나온 자리를 모두 폐허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재능으로 승하니, 다른 사람들을 ‘후지게’ 보고 무시한 거죠. 그래서 돌아보기가 싫어요. 40대 중반이 분기점이에요. 이전에는 내 품위만 있고 상대방 품위는 없었다면, 그 즈음부터는 내 품위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품위를 먼저 지켜줘야 내 품위도 지켜진다는 걸 깨달았죠. 그 전에는 ‘죽어도 안 된다’는 말을 곧잘 했는데, 지금은 ‘죽어도 안될 게 뭐 있냐, 방향을 좀 고치면 되지’ 하는 식이죠.”

-두 분을 잘 아는 인사가 그러더군요. 자기가 본 가장 이상적인 부부라고.

“저는 정혜신씨를 만나서 (많은 게) 바뀌었죠. 우리는 우리의 욕구에 충실해요. 늘 서로 상태가 어떤지, 만족하고 있는지,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뻥’은 아닌지, 점검하죠. 내가 온전한 존재로서 인정 받는다는 느낌이 있으면 별로 겁날 게 없어요. 그 친구는 이제까지 함께 살면서 단 한번도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죠. 온 존재로 나를 인정해줘요.”

-원래 잘 맞았던 건가요, 살면서 그렇게 된 건가요?

“맞춰진 거죠. (성향이) 완전히 반대거든요. 예를 들면, 나는 완벽주의자고, 분노도 잘하죠. (반면) 그 친구는 세상 급한 게 없어요. 자신이 꽂힌 것만 보이죠. 그것을 하는 데는 겁도 없고요. 이렇게 스타일이 다르지만, 어떤 사건에 대처하는 태도는 공유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려면 최소한의 예의와 태도를 헌법처럼 지키면서 대화를 해야 해요. 그러면서 괴로운 얘기일지라도 바닥까지 내려가보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도 어떤 건지 (답이) 나와요. 그러니 우리의 대화 주제는 늘 종횡무진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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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던 사람도, 정혜신 만나면 살아나…

당대 최고의 치유자이자 나의 ‘다정한 전사’”

“개인은 하나의 우주… 그를 살리면 세상을 구해”

이명수씨는 ‘심리기획자’를 “나에게 마음이 있듯, 상대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작년에 “시가 뿜어내는 치유적 공기”를 담아 낸 책 ‘내 마음이 지옥일 때’가 앞에 놓여있다. 김주성 기자

-작년에 ‘내 마음이 지옥일 때’란 책을 내셨죠. 심리기획가도 마음이 지옥일 때가 있나요?

“있죠. 오늘 아침에도 한 번 갔다 왔는데. (웃음) 누구나 있지요. 그런데 지옥에서 잘 나오는 게 중요해요. 사람들이 잘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희생을 안 하려고 해서지요. 예를 들어, 내 손가락 하나를 포기해야 나올 수 있을 때가 있는데도 온전한 상태로 나오려고 하니까 나오지 못해요. 그 대가가 돈일 수도, 명예일 수도, 권력일 수도, 관계일 수도 있죠. 그건 손해가 아니에요. 앞으로는 밑지는 것 같아도, 뒤로는 남는 장사라고 할까요.”

-십 수년을 사회적으로 상처를 입은 이들과 함께 했는데, 그건 ‘남는 장사’였나요?

“남았잖아요. 내가 살았잖아요(웃음). 진짜 (나의 회복을 바란) 그 사람들의 힘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회복하고 난 뒤에 앰뷸런스에서 정혜신씨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하고, 병원까지 실어다 준 119구급대원들에게 인사를 가기 전에 먼저 간 곳이 있어요. 관식이 추모관이죠. 관식이 엄마는 ‘이웃’에서 만났어요. 11년 전 체험학습을 떠났던 아들 관식이를 잃었죠. 그 뒤로 5년 간 외출을 하지 못했어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잇따라 혈육들이 세상을 뜬 뒤였죠. 정혜신씨와 3년 간 관식이 엄마와 마음을 나누는 데 공을 들였어요. 함께 관식이를 보러 가기도 하고요. 우리한테 그러더군요.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고. 그런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준 게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받은 것도 많지요. 지금은 다시 일어선 그가 또 다른 이웃치유자가 되었죠. 그런데 병원에 누워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녀석이 나를 도왔나 보다’ 하는. 저 세상에 있으니 우리보다 힘이 더 세지 않겠어요?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도왔을 거라고 정혜신과 나는 그렇게 믿어요.”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지켜온,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갈 삶의 도는 무엇인가요?

“음…, 개별성에 대한 집중이죠. 나든, 남이든, 그걸 인정하면 삶이 편안해져요. 부모 뜻에 따라 자녀가 사회적으로 훌륭한 직업을 가졌다고 쳐요. 부모 입장에서 기특한 것이지, 아이 개인의 삶에 집중해 들어가보면 억압 받았다고 생각해서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래서 ‘너희 좋을 대로 살라’고 했죠. 개별성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화두이자, 치유의 기본이기도 해요. 하나의 개별적 존재는 하나의 우주이고, 우주를 구하면 세상이 구해진다는 게 우리의 철칙이니까요.”

-하나의 우주를 구하면 세상이 구해진다니요?

“그 하나가 치유의 동심원을 만들기 때문이죠. 한 사람이 죽음의 고통에 빠지면, 최소한 그의 가족, 가까운 이들까지 20명이 동시에 빠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가 살아나면 그들도 함께 살아나는 거죠. 그러니 한 사람을 구하면 20명을 구하는 거예요. 개별성에 집중하는 게 그래서 진리죠.”

그는 다소 쑥스럽게 종이봉투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미숫가루와 꿀이 옹기종기 있었다. 119구급대원을 비롯해 심 정지 사건의 이웃치유자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 귀한 걸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할 찰나 나도 모르게 “아…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미숫가루 봉지와 꿀을 넣기에 알맞은 크기로, 심지어 꿀에 매인 리본 장식과 같은 색이 들어간 봉투를 골랐을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양할 도리가 내겐 없었다.

이명수씨는 이런 얘기도 했다. “정혜신한테 배운 건데, 모든 사람은 다 치유적 존재라는 거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을 가졌다고요. 그걸 끄집어 내어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이지. 그걸 끄집어 내줄 사람, 많이도 필요 없어요. 딱 한 사람이면 돼요. 1년에 수십억 병 생수를 생산하는 회사 사장이라도 사막에 고립되면 생수 딱 한 병만 있으면 살수 있듯이.”

마음을 생각하며 살아본 게 언제던가. 그리고 내 마음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그것은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동심원의 막강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해본 적은. 그것의 존재를 믿는 이들이 바로 공동체라고, 아니 공동체에 속했다면 마땅히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이 ‘당대 최고의 부부치유단’은 말하고 있다.

5년 전쯤 경기 양평의 집에서 지인들과 ‘수다모임’을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이명수ㆍ정혜신 부부. 이명수씨 제공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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