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가 함께 봉사하던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을 향해 연탄 색깔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다는 문제 발언을 날린 지난 12월 18일은 마침 세계 이주민의 날이었다. 2000년 유엔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대한 협약이 각국에서 실효를 발휘할 수 있도록 촉구한다는 취지에서 이 날을 제정하였다. 아직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을 비준한 국가가 46개국뿐인 상황이니, 한국 정부가 이 협약에 법적 효력이 있는 비준은커녕 아직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것은 없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고 이주민의 수가 늘어나면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 기대할 상황도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보호의 미비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한국사회에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해 있으면서도 여기에 매우 무감각하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유학생에게 피부색이 검다고 연탄 색과 같다고 한 정치인의 발언은 물론 그 자체로 충격적이지만, 심각한 인종차별주의는 그 발언 자체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선 사과 발언이 “2차 가해” 수준으로 부적절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성희롱 사건에서 많이 듣던 변명처럼 문제 행동은 그저 “친근함의 표현”이었을 뿐이며, 듣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것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 여당 대표가 낸 사과의 변이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나이 몇 살 많으면 아무에게나 말을 낮추고 친근하게 구는 무례한 관행도 거슬리지만, 무엇보다 내가 너에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여전히 상대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의 표현일 뿐이다. 사실 상처를 받기로 치면 모욕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문제 발언을 한 해당 정치인이 정치 생명에 상처를 받았어야 마땅하다. 또 그 정도 위치의 정치인이 그런 정도의 큰 문제 발언을 하고서도 같지 않은 사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도 큰 상처를 받았어야 정상일 테지만, 현실은 다른 듯하다.
사실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이 더 큰 정치 문제로 비화하지 않고 끝나게 된 데는 한국 사회 자체가 가진 문제점 탓이 크다. 우선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종주의를 아예 한국사회의 문제로조차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이므로 인종문제란 이주민들로 인해 비로소 생겨난 문제이고 따라서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저들에 대한 포용의 문제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서 “우리 안의 인종주의”에 대한 반성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실상 한국은 인종주의가 매우 심각한 지역에 속한다.
우선 한국이 단일민족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종주의적이며, 같은 이주민이라고 해도 피부색이나 출신 나라에 따라 달리 대접하면서 턱 없이 우월감을 느끼거나 아니면 열등감을 느끼는 것 자체도 인종주의이다. 혼혈이라는 말로 마치 피가 섞이지 않고 태어나는 인간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 또 피부색뿐 아니라 성별이나 연령, 심지어는 혈액형과 같은 특정한 신체의 지표를 통해 개인을 범주화하고 차별하는 관행 역시 인종주의라고 한다면, 사실 한국이야 말로 인종주의의 영향력이 가장 만연해 있는 나라인 것이다.
물론 한국의 인종주의의 형성에는 한국전쟁과 식민지의 경험을 포함한 역사적 배경이 있고, 한국인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었던 경험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인종주의의 해결이 단순히 노골적인 차별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교양을 갖추거나 약자에 대한 배려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의제임을 인정하는 일이다. 실제로 이주민들의 목소리가 공론의 장에서 들리고, 이들 역시 중요한 유권자였다면 차별 발언 문제가 이번처럼 그냥 지나갔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미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노동하고 세금을 내며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정치적 대변 문제가 이제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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