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세인 기자

등록 : 2017.08.30 13:02
수정 : 2017.08.30 14:50

[석면, 또 다른 이야기] “1년 남았다는데…” 영문 모를 시한부 선고

악성중피종 환자 홍지영(가명)씨 인터뷰

등록 : 2017.08.30 13:02
수정 : 2017.08.30 14:50

30년 가까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살아

“고향집 지붕, 슬레이트 위에 기와 씌워

동네 폐암 환자들… 학교 선배도 죽어”

악성중피종 환자 홍지영(가명)씨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 방문해 중피종 진단, 치료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를 찾은 악성중피종 환자 홍지영(가명ㆍ52)씨는 지난해 10월 길어야 1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홍씨가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은 밤새도록 멎을 줄 모르는 기침 때문이었다. 감기 증세가 조금 심한 것 같다고 느끼며 간 동네 병원에서 찍은 흉부 엑스레이에는 폐 아랫부분에 까만 음영이 보였다고 한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찾은 대학병원 교수가 CT촬영 끝에 알려준 병명은 흉막암, 무슨 병인지 몰라 한참을 묻고서야 석면 때문에 생긴 악성중피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을 찾은 지 한달 쯤 지난 무렵이었다.

의사로부터 원인을 듣고서도 홍씨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석면 병에 걸렸다는 다른 사람들처럼 석면 광산이나 공장 근처에 살지도 않았고 직업도 전혀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신부화장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는 “매일 들이마시던 화장품 가루나 스프레이 때문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40년 전 기억을 더듬어 떠올린 그의 고향은 전남 구례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지리산 산기슭, 봄이면 노란 산수유가 흐드러진 마을이었다. 슬레이트 위에 기와를 덧씌운 고향집의 모습이 그려졌지만 그것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았다. 홍씨는 “지붕 보수를 하면서 슬레이트를 철거하려고 하다가도 부모님이 슬레이트가 아깝다며 그 위에다 기와를 씌웠던 기억이 난다”면서 “동네에서도 폐암 환자가 몇몇 있었고 재작년엔가는 학교 선배가 폐암으로 죽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석면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종양내과로 옮긴 홍씨의 눈에 비친 환자들의 모습은 수 개월 이내에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는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따금씩 들리는 옆 병실 환자의 보호자와 의사의 대화 속에는 “이제 준비하셔야 한다”는 말이 귀에 박혔다. 얼마나 남았냐는 홍씨의 물음에 의사는 “항암치료를 받으면 1년, 받지 않으면 3개월인데 경과가 좋아질 수 있으니 희망을 갖고 (치료를) 해 봅시다”고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홍씨의 남은 삶은 1년짜리 시한부가 됐다.

수술 과정에서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의사의 판단에 6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은 뒤 30차례 방사선을 쐬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했다. 처음 세 차례 항암치료를 받은 뒤 암 세포가 줄었다는 결과를 받아봤지만 이후에는 차도가 없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다는 치료를 다 마친 홍씨는 “공기 좋은 데 가서 혼자 사느니 하루하루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제일 나은 것 같다”며 집에서의 생활을 선택했다.

이따금 남편이 떠 준 물을 마시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홍씨는 주치의가 이야기했던 1년이라는 기간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듯 했다. 그는 “인터넷 카페를 찾아봐도 3개월에서 1년 정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글, 진단 후 1~2년 이내에 죽은 사람들의 글 밖에 눈에 안들어 온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혼자 있는 순간이 오면 ‘좀 있으면 진단받은 지 1년이 돼 가네… 벌써 1년이네’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건 어쩔 수 없는가봐.“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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