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딸 자신 있어? 없지? 올림픽이 전국체전보다 더 쉬워”
숨 막히는 슛오프(세트스코어가 동점일 때 두 선수가 한 발씩 쏘는 방식)에 들어가기 전 박채순(51) 남자양궁대표팀 감독이 구본찬(23ㆍ현대제철양궁단)에게 외쳤다.
구본찬이 슛오프 고비를 넘어 한국 양궁 역사를 새로 썼다.
그는 13일(한국시간) 브라질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장샤를 발라동(프랑스)을 7-3(30-28 28-26 29-29 28-29 27-26)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지난 7일 남자 단체전에 이은 2관왕. 한국 양궁은 단체전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이후 처음으로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석권하는 위업을 이뤘다.
구본찬이 우승하기까지 산 넘어 산이었다. 그는 8강과 4강을 모두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통과했다.
테일러 워스(호주)와 8강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승부 끝에 4세트까지 5-5로 맞섰다. 슛오프 대결에서 구본찬이 10점, 워스가 9점을 쏘며 승리했다. 4강 상대는 ‘한국 킬러’ 브래디 엘리슨(미국)이었다. 두 선수는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를 펼쳤다. 3세트까지 29-29, 28-28, 29-29로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구본찬이 4세트를 27-26로 잡아내며 승기를 잡았으나 엘리슨은 5세트에서 29점을 쏘며 28점에 그친 구본찬을 따돌리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또 한 번의 슛오프. 엘리슨이 8점을 쏘자 구본찬은 심호흡을 가다듬은 뒤 9점을 쏴 결승 무대를 밟았다.
단 한 발만 빗나가도 바로 탈락하는 슛오프. 바로 뒤에서 구본찬을 지켜본 박채순 감독은 그러나 경기 뒤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마음이 편했다”고 밝혔다. 평정심을 잃지 않은 요인으로 박 감독은 “사실 올림픽이 전국체전보다 쉽다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어렵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박 감독은 “조금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따기 진짜 힘들다. 우리 선수들 실력이 그 정도로 높다”며 “구본찬에게 ‘야 너 한국 가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딸 수 있어? 못 따지? 올림픽이 더 편해’라고 말해줬다”며 웃음 지었다.
사실 구본찬의 슛오프 승률은 썩 좋지 못하다. 그는 “40%도 안 된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 ‘평소 내가 쏘던 자세로만 쏘자’고 외치며 이겨냈다.
구본찬은 “박 감독님께서 늘 ‘너희가 세계 최고야’ ‘멍석 깔아줄 테니 마음껏 놀아봐’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움은 남기지 말자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잘 풀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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