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승준 기자

등록 : 2017.09.02 04:40

‘디지털 신인류’ 소리꾼 나훈아

11년 만에 돌아온 트로트 황제의 파격 행보

등록 : 2017.09.02 04:40

한국 전쟁 직후 태어난 가수의 홍보 전략은 아이돌 같다. 나훈아는 새 앨범 '드림 어게인'에 실린 6곡을 USB에 담아 음반으로 냈고, 공연 티켓 예매 전용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팬들과 소통한다. 예소리 제공

공연 전용 예매 사이트 만들고 USB에 신곡 담고

환하게 웃는 사진과 신곡 뮤직비디오를 올려 공연 티켓 예매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유행의 중심에 선 아이돌이 벌인 깜짝 이벤트가 아니다.

올해 일흔이 된 트로트 가수 나훈아 얘기다. 그는 ‘나훈아티켓’을 열었다. 인터파크 같은 티켓 예매 사이트가 아닌, 자신만의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 공연 티켓을 파는 건 이례적이다. 가수 싸이와 그룹 트와이스 등 ‘젊은’ 한류 가수도 하지 않은 시도다.

11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온 노장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다. 나훈아는 ‘남자의 인생’ 을 비롯한 신곡을 이동식저장매체(USB)에 담아 음반으로 냈고,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올려 곡을 알렸다. 음악 유통 방식은 아이돌과 똑같다. 나훈아는 새 앨범 ‘드림 어게인’에 실린 8곡을 온라인 음악 사이트에도 공개했다. 그가 신작을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1966년 노래 ‘천리길’로 데뷔한지 51년 만에 세상도, 나훈아도 확 바뀐 것이다.

턱수염이 하얗게 센 나훈아는 ‘디지털족’이다.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훈아는 지인들 사이에서 ‘기발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금화 100개를 가까운 지인들에게 돌린 적이 있다. 본인의 사인과 얼굴을 새긴 두 돈짜리 금화였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2006년의 일이었다. 음악 여정을 함께 한 이들에 고마움을 전하는 깜짝 선물이었다. 중세 시대도 아닌데 금화라니. 나훈아는 독특한 방식으로 지인들과 소통한다.

가수 나훈아가 최근 개설한 공연 티켓 예매 전용 사이트. 가수 싸이와 그룹 트와이스 등 한류 스타들도 시도한 적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

인도 갠지스강 배낭여행… 가객의 깜짝 복귀

나훈아의 가요계 복귀도 예상 밖이었다. 나훈아는 10여 년을 칩거했다. 건강 악화설과 일본 폭력조직 관련설 등에 휩싸여 2008년 1월 기자회견을 열어 루머를 직접 부인한 뒤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자신이 세운 기획사 아라기획의 서울 이태원 사무실까지 닫았다. 은퇴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두문불출하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감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훈아 소속사 예소리의 윤중민 대표는 “나훈아가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떠났었다”고 전했다. 나훈아는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마치고 인도로 떠나 갠지스강 등을 돌며 여행을 다녔다. 혼자 배낭을 메고 주로 오지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나훈아를 3,4년 전에 만났다는 원로 가요 관계자는 “그때만 해도 복귀 얘기는 없었다”고 했다. 지인들에게도 복귀 의사를 좀처럼 내비치지 않았던 나훈아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나훈아와 40년 지기로 책 ‘불후의 광대 나훈아’를 쓴 남강일 씨는 “노래 인생을 잘 마무리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은퇴 쇼로 끝을 알려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물쩍 사라지는 건 나훈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나훈아는 이번 신작을 기획하면서 ”죽기 전에 꿈을 꽃피우겠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운 칠순의 가객이 들고 온 노래는 남성적이고 뜨겁다. 평범한 가장의 고된 일상을 담은 노래(‘남자의 인생’)가 새 앨범 타이틀곡이다. “부족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살아온 그가 진정성 가득한 스토리텔링으로 소통과 공감대를 만들려 노력했다”(최규성 음악평론가)는 평이다. 수록곡 ‘몰라’에선 전자 기타의 연주가 강렬하다. “록부터 팝 발라드(‘당신아’)까지 다양한 장르를 녹여 낡게만 느껴지지 않는다.”(김상화 음악평론가)

장르 특성상 곡에 대한 반응은 다소 늦다. 대신 중년층의 호응은 뜨겁다. 음원 소비량을 집계하는 국가 공인 가온차트에 따르면,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은 7월 BGM 월간 차트 6위에 올랐다. 인터넷 블로그와 온라인 메신저 등에서 배경 음악으로 많이 소비된 덕이다. 최태영 가온차트 과장은 “온라인 메신저 배경 음악의 주 소비층은 중년”이라며 “중년층이 온라인에서 나훈아의 음원을 많이 산 결과 ’남자의 인생’이 BGM 주간 차트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가수 나훈아는 신비주의로 유명하다. 무대에 입고 나갈 의상도 천으로 가려 옮긴다. 공연 전 의상을 노출하면 관객의 신비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유 있는 신비주의… 연말 공연에서 들려줄 ‘가객의 꿈’

변하지 않은 건 나훈아의 신비주의다. 그는 복귀한 뒤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방송가 ‘섭외 1순위’지만, TV 출연을 꺼린다. 새 앨범을 낸 뒤 흔한 기자회견도 열지 않았다. 소속사를 통해도 전화 연결은 할 수 없다. 대외 창구는 소속사 대표의 이메일이 전부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면 스타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 외엔 마이크를 잡지 않는다. 가수로서 가치를 쌓는 방식이다.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사람 앞에서만 공연을 한다”며 국내 대기업 총수의 연회 초대를 거절한 건 나훈아의 공연에 대한 고집을 보여준 일화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나훈아는 무대 의상도 천으로 꽁꽁 숨긴 채 옮긴다고 한다. 관객이 공연 전에 그의 의상을 먼저 보면 신비감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새 앨범을 내고도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나훈아는 연말 공연을 준비 중이다. 스태프 100여명과 무용단, 합창단 등 50여 명이 투입되는 대형 공연이다. 11월 3~5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24~26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12월 15~17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공연의 주제는 ‘드림’이다. 10여 년 만에 돌아온 소리꾼은 무대에서 어떤 꿈을 들려줄까.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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