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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매로 가르쳐야" 훈육 핑계 대며 폭력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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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매로 가르쳐야" 훈육 핑계 대며 폭력 정당화

입력
2016.01.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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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가해자 33%

“양육태도ㆍ방법 부족” 특성 보여

사회ㆍ경제적 스트레스도 높은 편

아동복지법엔 체벌 금지 명시됐지만

다른법엔 허용 여지 계속 남아있어

“체벌은 폭력” 법제화 이뤄져야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보건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가해자들이 보인 가장 큰 특징은 ‘양육 태도와 방법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동학대 가해자 3만454명(중복 포함) 중 3분의 1(33.1%ㆍ1만76명)이 이런 특징을 보였다. 사진은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사립 유치원에서 어린이가 수업용 블록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보건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가해자들이 보인 가장 큰 특징은 ‘양육 태도와 방법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동학대 가해자 3만454명(중복 포함) 중 3분의 1(33.1%ㆍ1만76명)이 이런 특징을 보였다. 사진은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사립 유치원에서 어린이가 수업용 블록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워킹맘인 A(37)씨는 초등학생인 큰 딸(10)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밥도 먹지 않은 채 20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부모님이 집에 오셨는데도 딸이 인사를 하지 않자 A씨는 딸의 머리채를 끌고 화장실로 가서 뺨을 때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11월 중순의 추운 날씨인데도 딸을 맨발로 집 밖 복도로 내보내고 계단으로 밀쳤다. A씨는 이전에도 두 딸을 화장실에 가두고 말을 더듬으면 자로 입을 때리거나 쇠로 된 회초리가 휘어질 정도로 아이들의 몸을 때리기도 했다. 명백한 아동학대인데도 A씨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딸들이 행동을 느리게 할 때 가장 화가 난다”며 “이렇게 느리게 행동하면 공부도 못 하고, 잘못 클 것 같아 불안했다”고 말했다. 자녀를 훈육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 것이다.

30대 주부 B씨는 밥을 차려놓으면 밥상 밑이며 사방을 돌아다니는 아들(6) 때문에 힘들어 했다. 아들은 손을 씻을 때마다 수도꼭지를 꾹 누르는 장난을 쳐 옷을 흠뻑 적시곤 했다. 타이르기도 하고 칭찬도 해봤지만 아들이 장난을 그치지 않자 그는 ‘아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으로 매를 들었다. 한 번 매를 들기 시작하니 강도는 날이 갈수록 세졌고, B씨는 급기야 아들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 심리상담을 받은 B씨는 “완벽해야 한다는 내 기준에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들을 때려왔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자신의 학대 행위를 ‘훈육’이었다고 항변한다. 대화를 통한 아이의 행동 변화 유도, 올바른 행동에 대한 보상 등 훈육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체벌이 훈육의 중요한 방식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소풍을 가고 싶다던 의붓딸(8)을 때려 숨지게 한 2013년 울산 계모 사건, 지난 주 밝혀진 부천 아동 시신 훼손 사건 가해자도 마찬가지였다. 울산 계모는 재판에서 “딸의 훈육을 위해 체벌을 했다”고 주장했으며, 부천 학대 아동(사망 당시 7세)의 아버지 역시 체벌과 제재만이 적절한 훈육이라고 여겨온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보건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가해자들이 보인 가장 큰 특징은 ‘양육 태도와 방법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동학대 가해자 3만454명(중복 포함) 중 3분의 1(33.1%ㆍ1만76명)이 이런 특징을 보였다. 홍창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홍보협력팀장은 “양육 태도가 부족한 것으로 분류된 가해자들은 ‘학대가 아닌 훈육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이렇게 훈육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아동학대 가해자 10명 중 8명은 아동의 부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부모가 자녀 훈육을 핑계로 아동학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체벌은 ‘아동학대’이며 훈육의 효과도 없다고 지적한다. 김형희 서울영등포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팀장은 “체벌은 훈육이 아닌 폭력”이라며 “신체적 고통을 가해서 아동의 문제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본 적이 없는데도 체벌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아동들은 체벌을 통해 폭력성을 학습하고 이는 학교 폭력,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홍순범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이들은 어른에게 맞을 때 ‘내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구나’라는 메시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어른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힘으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네’라고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며 “약자를 대할 때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체벌은 학대로 대물림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체벌 근절을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성인 간 신체 가해행위는 폭력으로 규정되는 데 반해,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가해행위는 훈육으로 둔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체벌은 훈육이라는 인식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지만 과거부터 체벌을 당해 온 어른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며 법제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실제로 아동복지법만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있을 뿐 다른 법들은 사실상 체벌을 방조하는 상황이다. ‘친권자는 보호 또는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민법 제915조),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초중등교육법 제18조) 등이 그렇다. 때문에 징계 시에도 비폭력을 사용하고, 아이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관련 법에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아동학대 방지 활동을 벌여온 시민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체벌근절 법제화’를 목표로 4월까지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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