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제 수습방안 예상 깨고
사실상 만장일치로 전격 채택
최순실 긴급 체포ㆍ인적 쇄신도 결정
“대통령에 기대할 게 없다…” 기류
미래권력으로 옮겨 타기 현실화
비박계는 “지도부 공동 책임져야”
새누리당 지도부가 30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강력히 촉구하기로 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정현 당 대표를 비롯해, 친박 색채가 강해 ‘친박 친정체제’로까지 불린 현 지도부가 대통령의 핵심 권한인 내각 인사권을 국회로 가져오겠다는 초강수의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거국중립내각은 현 내각이 총사퇴한 뒤 여야 협의로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을 구성하는 방안으로 대통령은 사실상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는 극약처방이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외교ㆍ안보 등 외치는 대통령이 그대로 맡아 역할을 하게 해주고, 총리가 내치와 각료 추천권 등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는 책임총리제가 현실적인 수습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이날 최고위에서는 예상을 깨고 ▦거국중립내각 구성 ▦최순실 긴급체포 ▦대폭적 인적쇄신 등 3대 요구사항이 결정됐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인적 쇄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최고위원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거국중립내각 제안은 친박계 성향의 지도부조차 별 다른 거부의사 없이 받아들이며 사실상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당 고위 관계자는 “100이라는 해법이 있다면 80정도를 내놓을 것이 아니라 120~130정도의 강도 높은 수습책이 있어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대를 이뤘으며, 이견은 없었다”고 전했다. 한 친박계 최고위원도 본보 통화에서 “거국내각 구성에 전격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친박계가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분기점으로 친박 색깔을 빼면서 박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들어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참에 저물어 가는 현재권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정권재창출이 가능한 미래권력으로 옮겨 타려는 움직임이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최고위 한 참석자는 “힘을 잃어가는 대통령에게 더는 기대할 게 없다는 기류가 팽배했던 느낌의 회의였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는 그동안 친박계가 인적 쇄신 대상으로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이 직접 거론되기도 했다.
이날 최고위가 열리기 앞서 친박계는 29일 서청원ㆍ최경환 의원과 조원진 최고위원 등 계파 핵심을 중심으로 긴급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춰 친박계가 사전에 거국중립내각 입장을 사전에 조율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비박계를 중심으로 8ㆍ9 전당대회 이후 당청은 한 몸임을 내세우며 박 대통령ㆍ청와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현 지도부를 향해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최고위는 “당이 선도해 적극적으로 난국을 타개하겠다”며 일단 책임론을 비켜갔다. 하지만 이날 밤 초재선 의원 10여명은 서울 모처에서 만나 지도부 퇴진은 물론 특검의 방향, 거국내각을 이끌 국무총리 적임자 등에 대해 논의하고 향후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위기 타개를 위한 당 내부의 전쟁도 벌어질 전망이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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