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이 최초 발의
기업 자발적 모금 취지로
청와대 비서진에 지시
창조경제 성과 과욕이 원인
최순실 끼어들면서 사달”
전 청와대 관계자가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의혹인 미르ㆍK스포츠재단의 최초 발의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명시했다. 주요 국정과제였던 ‘창조경제’의 성과물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발의했다는 것이다.
8일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 A씨는 “(미르ㆍK스포츠 기획자는) VIP(대통령)다. 대통령이 제안하고 기업 회장들의 공감대가 모아지면, 이후 운영을 재단이 하는 것으로 구상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청와대 비서진에)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A씨는 대통령이 두 재단 설립을 구상한 배경에는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와 창조경제의 성과에 대한 과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강한 구조조정도 불가능하고, 신 성장동력이 필요한데 돈을 끌어 안고 있기만 할 뿐 먼저 움직이는 기업이 없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통한 문화사업으로 신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취임 초기부터 핵심과제로 추진해 온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성과물이자 위기를 헤쳐갈 대안으로 두 재단을 내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문화ㆍ체육에 초점을 맞춘 이유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기업이나 산업의 구체적 사정을 모른다”면서 “하지만 본인이 유럽, 아시아 곳곳을 다녀보니까 아는 것이다. 아랍권에 가면 ‘대장금’부터 찾듯이 문화가 얘기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의혹이 커진 지난 달 20일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엄정 처벌’과 ‘재단의 순수한 의도’를 밝힌 것 역시 ‘방어’인 동시에 ‘애착’이라는 게 A씨의 해석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당시 발언의 상당 부분을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페랑디 유치 사업, K타워 프로젝트 등 주요 사업부터 프랑스 파리 케이콘 행사, 전통품새 공연 등 소소한 행사까지 두 재단 사업을 열거하는데 할애했다.
A씨는 최순실(60)씨의 개입 경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A씨는 “대통령의 사업 안목을 뭐라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최씨가 끼어들면서 모든 사달이 났다”며 “최씨가 그 분야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제대로 된 사업을) 위해서라면 최씨의 개입만큼은 없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재단 운영에 대한 의사결정이 재단 실무진 보고→최씨→제 3자 또는 대통령→청와대 실무진 순으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A씨는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정호성(47ㆍ구속) 전 부속비서관이 최씨와 수시로 통화한 단서가 발견되면서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최씨 및 대통령의 전달 사항이 함께 실무진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검찰 역시 강제모금 의혹과 관련된 사실관계 외에 두 재단의 성격 파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재단 설립의도와 사업 집행, 운영방안 등이 파악돼야 박 대통령을 비롯해 연루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직무범위 기준을 정하고 혐의를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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