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한글전쟁'
창제부터 현재까지 우리글 투쟁사, 우리말ㆍ우리 문화의 적은 누구인가
구연상 '우리말은 병신 말입니까'
영어 몰입교육, 영어 강의, 영어 논문...우리글 망치는 주범 대학 지목
9일은 한글날이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크고 작은 기념 행사보다 한글과 한글문화의 미래를 걱정하는 두 권의 신간이 눈에 띈다. 출판사 대표이고 ‘세상의 모든 지식’의 저자로 잘 알려진 김흥식의 ‘한글전쟁’(서해문집 발행)은 우리말과 글이 죽어가고 있다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우리말로학문하기 운동을 해온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말은 병신 말입니까’(채륜 발행)에서 우리말을 병신으로 만드는 적을 규탄한다. 두 책 모두 지금 한글의 운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영어의 무차별 침투를 꼽는다.
‘한글전쟁’은 ‘우리말 우리글 5천년 투쟁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한글 탄생 이전부터 현재까지 우리말과 우리글이 걸어온 길을 언어와 문화를 둘러싼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한글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한글이 치러온 전쟁을 여섯 시기로 구분한다. 한자의 유입, 세종의 한글 창제, 한글이 나라의 공식 문자가 된 1894년 고종 칙령, 일제 식민지 시기, 해방 후, 그리고 지금으로 매듭을 지어 우리말과 우리글의 투쟁사를 정리했다. 한자에 밀려 우리말 고유어가 많이 사라졌다. 조선시대 한글은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세력을 확장했다. 한글이 공식문자가 된 뒤로 한글교육과 연구,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승기를 굳혀가던 한글은 일제의 침략을 계기로 다시 저항에 나선다. 해방 후 한글전쟁은 한글 전용 논란, 한글 간소화 파동 등 내부 전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한글은 영어라는 핵폭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6차 대전을 치르는 중이다. 한글 창제 후 수백 년 동안 한글은 아군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영어 핵전쟁에 저항하는 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어를 잘해야 대접받고 영어를 쓰지 않고는 대화가 어려울 지경이다. 한글의 미래를 비관하게 만드는 이유다. 저자는 하와이에서 영어를 제1언어로 쓴 지 200년도 안 돼 완전히 사라져버린 하와이어를 예로 들며 한글의 운명을 묻는다. 한글의 천년은 가능할 것인가. 우리말은 천년 후에도 살아남을 것인가.
저자는 사라진 옛날 우리말을 되살리기보다 이내 죽어갈 운명에 처한 오늘의 우리말을 지키는 게 더 급하다고 강조한다. 한글전쟁에서 패하지 않으려면 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게 중요하다며 질문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한글의 적은 누구인가. 우리말의 적은 누구인가. 우리 문화의 적은 누구인가. 대답은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겼다.
구연상 교수의 ‘우리말은 병신말입니까’는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한다. 영어 몰입교육, 영어로 강의하기, 영어로 논문쓰기 같은 제도가 우리말과 글을 병신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멀쩡한 우리말과 글을 제 구실 못하게 망치는 주범으로 그는 대학평가를 지목한다. 대학의 목줄을 쥐고 있는 대학평가에 들어간 국제화 항목이 ‘영어로 학문하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교육부 대학평가와 조선ㆍ중앙 두 신문의 대학평가를 꼼꼼히 분석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제안한다.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외치는 저자의 주장은 영어를 거부하거나 외국어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모든 언어는 평등하다“는 관점 위에 서 있다. 모국어를 잃고 영어를 써야만 한다는 것은 정체성과 문화다양성의 상실을 낳고, 나아가 영어를 몰라 학문 문맹이 된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 두 권의 책은 영어의 공세 앞에서 한글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염려하지만, 그렇다고 한글의 위기를 한자나 영어 같은 외세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내부에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로 영어나 외래어를 마구잡이로 퍼뜨리는 언론을 꼽았다.
언어전쟁의 중요한 전선으로 번역 문제를 다룬 것도 공통적이다. ‘한글전쟁’은 “번역은 새로이 전개될 언어전쟁의 한복판에 자리한 전장“인데도 ”우리 사회는 이 전장을 국가 대신 사병에 맡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출판시장은 너무 좁아서 특별한 군수물자 지원이 없는 한 번역이란 전장에서 한글과 우리말이 살아남기는 어렵다“며 번역은 개별 번역가나 외서 출판사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말은 병신말입니까’는 학문번역원 같은 공적 기관을 만들어서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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