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된 모든 소 시료 확보해
DNA 비교로 이력 조작한 쇠고기 찾아내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 축산물 이력 정보 앱 서비스도
이달 중순, 세종시 축산물품질평가원 유전자분석팀이 공문 한 통을 받고 분주해졌다. 한 축산물 유통업자가 일반 쇠고기를 유명 브랜드 한우로 속여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서울보건환경연구원이 수사 협조 의뢰를 해온 것이다. 진실을 규명할 단서는 문제의 쇠고기에서 채취한 작은 고기 조각(실험군)과 이력 번호, 그리고 유전자분석팀이 보관한 시료(대조군). 유전자분석팀이 이를 통해 DNA 동일성 검사를 실시한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났다. 이력번호를 조작한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판정 결과를 통보 받은 관계 기관은 해당 유통업자에 대한 제재 조치에 들어갔다.
“불량 쇠고기를 잡아라.” 유전자분석팀에 주어진 임무다. 팀원이 불과 9명이지만, 이들이 없으면 축산물이력제의 신뢰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불량 쇠고기를 잡아내기 위해 강력 범죄 수사 기법을 동원하는 이 팀을 축산업계 관계자들은 ‘축산물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라고 부른다.
유전자분석팀의 업무는 방대한 양의 시료 축적에서부터 시작된다. 유전자분석팀은 전국 70여군데 도축장에서 도축된 모든 소의 유전자 데이터를 시료 형태로 이력번호와 함께 보관하고 있는데, 시료는 전국 도축장의 축산물품질평가원 직원들이 소 근육 부위에서 0.5~1g의 고기를 채취해 이력번호와 함께 보내온다. 한 해 국내에서 도축되는 소는 평균 100만 마리이고, 소 한마리당 시료를 2년간 보관하도록 돼 있어 유전자분석팀에는 항상 200여만 마리의 유전자 정보가 보관되어 있다.
이런 보관용 시료는 각 지방자치단체나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이력번호 조작이 의심되는 고기의 시료를 유전자분석팀에 보내올 때 실시하는 DNA동일성 검사에서 ‘대조군’으로 쓰인다. 김기범 유전자분석팀장은 “단속기관에서 유전자분석팀에 의뢰하는 사건 수는 매년 2만5,000여건 정도”라고 말했다.
기자가 사무실을 방문한 지난 25일에도 연구원들은 DNA동일성 검사에 한창이었다. 여기엔 정밀한 생명공학 기술이 쓰인다. 유전자분석팀은 DNA를 뽑아내기 위해 작은 고기 조각 형태인 대조군과 실험군(의심 고기)을 먼저 액체 형태로 만든다. 이후 DNA와 함께 각종 불순물이 섞여 있는 이 액체에 양(+)전하를 가해 DNA를 추출한다. DNA가 음(-)전하를 띄는 것에 착안한 방식이다. 이어 DNA 중 개체를 식별하는 데 필수적인 DNA지문 부위를 증폭하기 위해 ‘PCR(종합효소 연쇄 반응)증폭’을 거친다. 마지막으로 저항체가 든 튜브를 사이에 두고 DNA에 약 1,500볼트의 양 전하를 가하면 DNA가 튜브를 따라 전극 쪽으로 이동하면서 저항체에 막혀 크기 별로 분리된다. 이렇게 나뉜 DNA의 크기가 동일성 판단 기준이 된다. 김 팀장은 “사람은 DNA가 동일하면 범인으로 판명되지만, 쇠고기는 DNA가 다르면 범인이다. 같은 개체가 DNA검사에서 다른 개체로 나올 확률은 0%”라고 말했다.
유전자분석팀이 사용하는 감식 기법과 기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쓰는 것과 동일하다. 쇠고기 이력정보는 소비자가 직접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인 ‘축산물이력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쇠고기 포장지 라벨에 붙은 이력 번호나 QR코드를 앱에 입력하면, 소의 종류부터 출생일자, 소유주, 구제역 예방 접종 일자, 브루셀라 검사 일자, 육질 등급까지 소의 모든 정보가 나온다. 축평원 관계자는 “도축되는 모든 소에 이력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DNA검사를 범죄 수사 수준으로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정부3.0’의 정보 공개 취지에 맞게 앞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이력제 정보 범위도 점점 더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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