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태평양 전쟁의 참화가 서린 하와이 진주만의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적으로 싸웠던 미국과 일본 정상이 함께 진주만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아베 총리가 기념관에서 밝힐 메시지가 관심을 끈다.
1941년 일본군 공습으로 미군은 전함 애리조나호가 침몰하는 등 민간인을 포함해 2,400여명이 숨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음날 의회에서 ‘치욕의 날’이라고 부르며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 참전용사 등이 일본 지도자의 기념관 방문에 한사코 반대해 온 것은 미 국민이 겪은 전쟁의 상흔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전쟁책임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는 출국에 앞서 “전쟁의 참화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미래에 대한 생각, 맹세, 화해의 가치를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희생자에 대한 위령과 부전(不戰)의 맹세를 밝힐 것이라면서도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사죄하기 위해 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퇴행적 역사인식에 비추어 예견됐던 바다. 그는 지난해 8월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지난 전쟁의 행동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해 왔다”는 ‘과거형 사죄’에 그쳤을 뿐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 앞서 4월 미국 의회 연설에서도 “2차 대전 당시 숨진 미국인의 영령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미국을 의식한 발언에만 급급했다. 오히려 이번 메시지에는 ‘반성’이라는 표현마저 빠져서 과거 발언 수준에서 후퇴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은 전쟁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재확인하고 이를 통해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노리는 것일 가능성이 짙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5월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답례 형식인 이번 방문을 통해 전후 체제를 청산하고 미일동맹의 글로벌화를 꾀하려는 뜻이다. 아시아 중시전략에서 발을 빼는 듯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에게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대미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의도도 읽힌다.
혼돈에 휘말린 동북아 정세에서 아베 총리의 적극적 대미외교는 우리에게는 큰 자극이자 불안요소다. 한반도 주변 4강의 복잡한 움직임을 잘 헤아려 우리의 안보이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치밀한 외교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