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눈부신 육아ㆍ화려한 싱글… 기 죽어서 TV 안 봐요

입력
2016.09.20 20:00
0 0
지난 9일 방송된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범수의 딸 소을이가 추석 선물을 포장하며 라벨프린터기를 사용하고 있다. KBS 방송화면 캡처
지난 9일 방송된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범수의 딸 소을이가 추석 선물을 포장하며 라벨프린터기를 사용하고 있다. KBS 방송화면 캡처

“아이들에게 아예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안 보여줘요.”

7살과 5살 딸을 둔 주부 조민영(35)씨는 아이들에게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슈돌’)를 보여주지 않는다. 조씨는 “이범수의 딸 소을이가 입고 있는 원피스나 머리띠, 핀을 보면 무조건 사달라고 떼를 쓰는 딸들 때문에 곤란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시청 거부’ 이유를 밝혔다. 방송을 즐겨 볼 때 소을이와 다을이 남매가 입은 옷이 예뻐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는 깜짝 놀란 적도 있다. 티셔츠와 크게 차이 없는 도톰한 상의 하나가 7만원이나 했다. 저렴한 것을 찾아봐도 3만원 이상이었다.

최근 방영된 ‘슈돌’을 보면 값비싼 영유아 용품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지난 9일 방송에선 소을이와 다을이가 추석 선물을 포장한 뒤 글씨를 새겨 붙이던 라벨프린터기가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아이들이 손쉽게 소지품 등에 이름을 붙여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이 기계는 시중에서 10만원이 넘는 고가 상품이다. 워킹맘 이윤진(37)씨는 “외국계 대형마트에서 라벨프린터기를 보고는 ‘저런 비싼 걸 대체 누가 살까?’했는데 방송에 버젓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리얼리티를 내세워 스타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여러 예능프로그램이 정작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면으로 화면을 채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현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조합한다 해도 화려하고도 사치스러운 연예인들의 삶이 그대로 안방에 전달돼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문제 제기다. 일각에서는 간접광고(PPL)가 방송계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되면서 겉만 번지르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스타들의 삶이 더 부각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육아 프로그램인가, 비싼 육아용품 소개 프로인가

‘슈돌’을 보면 출연자들의 육아 과정도 눈이 부신다. 걸핏하면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아이들에게 승마체험까지 어렵지 않게 시키는 ‘슈돌’의 부모들을 보고 있자면 사회적 박탈감을 느낄 사람이 적지 않다. 부모들의 “‘슈돌’ 시청금지”가 뜬금없는 소리가 아닌 셈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남주은(42)씨는 “아들이 이동국 선수의 집을 보고는 우리도 거실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더라. 나중에 돈 벌면 가자고 했지만 계속 물어볼까 봐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시청자들에게만 ‘화면 속 떡’이 아니다. 부를 아직 이루지 못한 연예인들에게도 ‘슈돌’은 남의 이야기다. 한 개그맨은 “아이와 함께 ‘슈돌’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출연 연예인들의 생활 수준이 너무 높아 언감생심에 꿈도 못 꾼다”며 “(거주)아파트가 최소 40평은 되어야 출연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씁쓸해 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2회에 걸쳐 전현무가 이사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널찍한 아파트를 소개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2회에 걸쳐 전현무가 이사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널찍한 아파트를 소개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1인 가구 500만 시대를 맞아 싱글남녀의 일상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 역시 위화감으로 가득하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연예인들의 호화스러운 일상이 자주 비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 9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방송된 전현무의 이사 장면이 특히 그렇다. 전현무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전월세를 청산하고 내 집을 마련했다”고 뿌듯해 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44평형으로 매매 시세가 13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마흔 살인 전현무가 만약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10억 이상의 집을 그의 수익만으로 장만할 수 있었을까.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는 이국주 역시 외국브랜드 SVU차량으로 눈길을 사로 잡았다. 신형으로 알려진 이 차량의 가격은 옵션까지 추가하면 대략 1억2,000만원이다. 이국주는 방송에서 “1년 동안 번 돈을 그냥 써서 없애는 게 무서워 악착같이 모았다”고 설명했지만 보통 시청자들이 괴리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화려하고도 사치스러운 싱글 연예인들의 일상

SBS의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는 30~50대 남자 연예인들의 노총각 생활을 보여준다는 취지지만, 실상은 고급스러운 생활 그 자체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9일 방송에서 김건모가 구입한 소주냉장고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인기검색어가 될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가정용 소주냉장고는 60~100만원대. 널찍한 주거공간을 가진 사람에게나 어울릴 법한 물건으로 사치품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9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김건모가 구입한 소주냉장고. SBS 방송화면 캡처
9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김건모가 구입한 소주냉장고. SBS 방송화면 캡처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김건모가 소주냉장고에 술을 넣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SBS 방송화면 캡처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김건모가 소주냉장고에 술을 넣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SBS 방송화면 캡처

TV 속 지나치게 화려한 스타들의 일상에 대해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을 포함한 지상파 방송이 협찬과 PPL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내놓는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웬만하면 협찬이나 PPL을 자체적으로 지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출연 연예인의 개인 용품이 오해를 사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김건모가 산 소주냉장고도 협찬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구입한 제품이라는 것. 더군다나 ‘슈돌’은 시청자들로부터 쓴소리를 들었던 터라 협찬과 PPL을 자제하고 있다고.

그러나 협찬과 PPL의 의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슈돌’ 일부 장면에서 보여진 아이들의 의류나 가방, 신발, 장난감 등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제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봐도 “‘슈돌’ 협찬 제품”, “‘슈돌’에 촬영 장소 제공” 등의 정보가 줄줄이 나오기도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경남씨는 “요즘 지상파의 드라마나 예능이 시청자의 대리만족이라는 명분으로 부유한 생활을 자주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며 “위화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조성할 경우 오히려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