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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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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것들

입력
2016.10.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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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집권 4년 차는 어김없이 현행 대통령의 힘과 권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시기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이번의 경우는 그 강도가 남다르다.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던 최순실이란 인물의 믿을 수 없는 실체와 박근혜 대통령의 성장사에 관한 감성적 부분이 겹쳐지면서 정국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연 대통령이 임기를 끝까지 마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언론들도 연일 특종 기사를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고, 시민들도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혼란과 혼돈의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냉철함을 잃지 않고 사건의 맥락과 대책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분노하고 좌절하는 사이에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뒤늦게 후회하는 일은 없을지 살펴야 한다.

첫째, 비선세력에 의한 국정농단의 정확한 범위이다.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세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과연 그들이 실제로 저지른 국정개입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지, 청와대 참모진을 포함한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은 그 비정상적인 국정개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고 어떻게 협조자로서 역할을 했는지 철저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조치이다.

둘째, 이번 사태의 배후에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숨은 세력의 존재 여부이다. 지난 4년여의 세월 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에 언론을 통해 그간의 사정이 밝혀지는 과정은 누가 보아도 너무나 허술하다. 이사하면서 버려진 컴퓨터를 열어 보았더니 비밀번호도 설정되지 않은 상태로 관련 자료가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설명이다.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지금의 혼란과 분노,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고 의도된 것이라면 대한민국 사회는 다시 한 번 농락당하는 것이다.

셋째,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내년 대선을 치르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서 지금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고 그사이에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현안들이 너무 많다. 국민들에게도, 대통령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려놓는 것도, 내려놓지 않는 것도 매우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지금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세력과 시민세력들이 현재의 위기극복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건설적으로 협력할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이다.

넷째, 권력구조개혁을 포함한 헌법개정과 정치개혁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지 않고 어느 정권에서나 대선이 끝난 그다음 날부터 반대 진영에 대한 흠집 내기와 발목잡기가 시작되고, 집권 4년 차마다 반복되는 각종 게이트, 뒤따르는 사회적 혼란과 레임덕의 사회적 비용을 계속 안으면서 과연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깊은 의문이 있다. 물론 개헌논의가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지난 일주일 사이 필자를 포함해서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은 분노를 넘어서는 깊은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게 성취한 민주공화국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던가. 권력 주변에서 잘난척 하던 사람들은 일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그동안 뭘 했던 것인가.

분노하고 좌절하기에 마땅한 상황이지만, 거기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분노와 좌절의 상황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는지,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한 단계 더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냉철하게 고민해야 할 순간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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