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경실련 등과 접촉... 비난성 내용 표명 요구 논란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인수전 당시 유력 시민사회단체(NGO)에 잇따라 접촉해 “삼성그룹이 인수하면 강남 지역 땅을 싹쓸이하게 된다”는 등 경쟁자인 삼성에게 불리한 내용의 입장을 발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인수하기 위해 NGO까지 끌어들여 흑색선전을 시도한 것으로 현대차 측의 금도를 넘은 무리한 처신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9일 재계, NGO 등에 따르면 현대차 관계자는 7월 참여연대 관계자를 만나 “삼성이 삼성동 한전 부지를 인수할 경우 강남 땅의 대부분을 싹쓸이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참여연대 측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 줄 수 있겠느냐는 뜻을 전달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만나 “요청을 한 현대차 관계자에게 삼성 측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잘못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한전 부지 이슈도 그런 시각에서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8월 현대차 관계자가 또다시 연락을 해 오더니 위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슈이기 때문에 삼성 문제를 꼭 다뤄 달라고 재차 요구해 왔다”며 “삼성이 현대차처럼 부지 매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점도 이상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등이 속한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측은 한전 부지 매각과 관련 삼성 측이 잘못된 방법으로 부지 매입에 나설 경우 이를 지적할 수 있지만 삼성과 현대차 두 재벌 간의 경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개적 입장 표명을 할 필요는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
현대차 측은 이어 8월 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접촉했다. 경실련은 한전 측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측이 부지를 인수하게 된다’는 부지 매각 공고를 낸 8월 29일 ‘한전 부지 매각은 공공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단순한 최고 입찰 방식은 먹튀 등 외국계 투기 자본의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현대차 관계자가 성명서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현대차가 한전부지를 인수할 경우 경실련이 지적한 공공성 우선에 대해 최선을 다해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며 “평소 특별히 접촉이 없었는데 갑자기 연락을 해 와 우리 입장에 동조한다고 해 다소 놀랐다”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 측이 NGO는 물론 학계, 정계, 언론 등 여론 주도층에게 삼성이 한전부지를 인수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하고 다녔다”며 “삼성측이 한전 부지 인수 전략을 노출하지 않자 조급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NGO 관계자는 “대기업 관계자들이 종종 자신들과 관련 있는 이슈에 대해 입장을 전달하는 경우는 있지만 현대차처럼 다른 기업을 대놓고 비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객관성과 공정성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NGO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현대차의 발상 자체가 부적절했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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