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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입력
2017.07.0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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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의 대학 교수 연구실에서 우편물 폭탄이 터졌다. 속보를 접하자마자 걱정이 되어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원한이 의심되는 상황 속에서, 해당 교수는 절대 원한 같은 걸 살 분이 아니라는 동료 교수의 답변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리니, ‘갑질에 찌들어 있으면 갑질인지도 모른다’, ‘(교수들은) 대외적인 평판과 대내적인 평판은 별개이다’, ‘워낙 상대에 따라 처신이 다른 사람들이다’는 댓글이 달렸다. 진실이 무엇이든, 나는 교수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이런 식으로 고착화되어 가는 현실이 착잡하다.

본래 한국 대학의 분위기가 이토록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학부에 다니던 1990년대만 해도‘응답하라’로 알려진 TV 드라마가 묘사한 캠퍼스가 내 추억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느낌이었다. 2000년대 초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에 복학하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대학원생들이 교수에게 너무 설설 기었고, 갓 부임한 젊은 교수들은 정년 퇴임한 원로들보다도 더 권위주의적으로 굴었다.

권력에 민감하고 경직된 문화의 조직일수록 생각이 다른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이유가 되기 쉽다. “학생, 교수 관계가 이래서는 안되지 않느냐”고 한마디 던졌더니 몇몇 사람들에게 공적이 되었다. “파워 스트럭쳐(power structure)에 순응하지 않으면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한번은 국제 학회에서 발표를 하고 왔는데, 교수가 랩실의 학생들 앞에서 학회 다녀온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발표 내용 이야기를 할까요, 석학들이 한 이야기에 대해 말할까요?”라고 반문했는데, ‘석학’이라는 단어가 짐짓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대뜸 “석학? 네가 석학의 마음을 어찌 알겠냐?”고 한마디 했다.

나는 우리 지식인들의 정신적 식민성이 근대화 역사보다 더 오래된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한다. 김옥균의 암살범이었던 홍종우는 홍문관 교리에 오른 당대의 지식인이기도 했는데, 프랑스로 갔을 때 철학자 르낭을 만난 자리에서 깊은 존경을 표현하는 나머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그 신발에 입을 맞추었다.

오늘날도 영미나 유럽에 있다 보면 연구실 한구석에서 열심히 자기 연구만 하던 외국 교수들이 어쩌다 한국을 방문한 후 지나친 환대에 깜짝 놀라는 경우들을 종종 목격한다. 그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극동의 나라에서 자신이 ‘석학’ 급으로 그토록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감격하거나, 반대로 거만해져서 지나친 환대를 베푼 상대마저 경멸의 눈빛으로 내려다보곤 한다.

나는 그와 같은 비굴한 식민성의 문화가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들은 지식을 권력의 기회와 직결시키는 반면, 세속적으로 추구하는 지식 너머의 위대한 진리를 ‘천조국’의 석학만큼은 추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런 면에서, 외국 학자에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국내에선 정치적으로 군림하려 드는 모습은 일견 모순이되 일관된 전략이기도 하리라.

유학을 하면서 많은 석학을 만나고, 때론 그들과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유학 경험이 하나 좋았던 점은, 아마 ‘위대한 저서만큼 위대한 저자는 드물다’는 점을 체득한 것인 듯하다. 국제적으로 석학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정한 석학은 그리 많지 않다. 때론 영리한 지식 마케터가, 혹은 아카데미 정치에 능한 자가 그 칭호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진리에 목말라하고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그곳에 있기에 위대한 지식은 냉소와 좌절의 재 속에서 타오른다. 지식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료들이 그들의 버팀목이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지식에 대한 사랑과 동료애가 남아 있는가?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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