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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용 비효율' 한국식 접대 문화, 틀을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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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용 비효율' 한국식 접대 문화, 틀을 깨자

입력
2016.08.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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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허가권을 쥔 A기관의 과장과 저녁 약속이 예정된 당일 오후 갑자기 A기관의 국장도 참석한다는 연락이 온다. 장소를 고깃집에서 일식집으로 바꾼다. 상대방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과장급을 만날 때는 1인당 3만5,000원짜리 한우 꽃등심을 먹고, 국장급은 일식집이나 한정식집에서 코스(1인 5만~6만원)를 시킨다. 실장급 이상일 땐 반드시 호텔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맛집을 찾아 예약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접대 대상자가 이동하기 편한 곳으로 택하는 게 더 중요하다. 독립된 ‘룸’을 잡는 것은 필수다. 그래야 상대방이 ‘성의 있게 모신다’고 느낀다. 막상 자리가 시작되면 ‘폭탄주’ 돌리기에 바쁘다. 시시껄렁한 농담과 틀에 박힌 건배사가 오가고, 정작 해야 할 업무 이야기는 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맥주 한잔 더하자”고 1차를 정리한 뒤 조용한 바(Bar)나 카페로 이동한다. 2차에선 통상 양주를 시킨다. 골프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레 골프 약속을 잡는다. 가급적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하지만 만취한 상대가 여성 접대부가 있는 유흥주점이나 노래방을 가길 원하면 거부할 방법이 없다. 마음 속으로 ‘진상’이란 낙인을 찍는다. 이렇게 하룻밤에 쓰는 접대비는 대략 64만~97만원(4인 기준). 그러나 100만원을 훌쩍 넘길 때도 적잖다. 일정이 마무리되고 귀가용 택시를 잡아 요금을 먼저 결제한 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허리 굽혀 인사하면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란 허망한 말만 돌아온다.

접대 업무가 많은 대기업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일반적인 한국식 접대 흐름도다. 유흥업소에서는 결제가 되지 않는 ‘클린 카드’의 도입으로 하룻밤에 수백만원이 드는 룸살롱이나 단란주점까지 가는 일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접대 문화는 ‘고비용 구조’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통하겠다는 접대의 취지를 인정하더라도 방식은 지나치게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이 사실이다.

‘고비용 저효율 접대’가 일상화한 것은 접대비가 법인 비용으로 처리돼 사실상 ‘눈먼 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접대를 할 때는 우선 음식 가격부터 고려하게 된다”며 “소문난 맛집에서 대접해도 가격이 싸면 ‘나를 무시하는 거냐’는 반응이 나올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접대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비싼 것을 먹어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9만1,694개 기업들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 규모는 9조9,685억원(잠정치)에 달했다. 2008년 7조502억원, 2010년 7조6,658억원, 2012년 8조7,701억원, 2014년 9조3,368억원 등 접대비 규모는 계속 늘어왔다. 클린 카드 보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유흥업소에서 사용된 접대비는 1조1,418억원으로, 8년 연속 1조원을 넘었다. 접대비의 11.5%는 유흥업소에 뿌려진 셈이다. 이중 룸살롱이 6,772억원(59%)으로 가장 많았고, 단란주점(18%), 극장식 식당(11%), 요정(9%), 나이트클럽(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식 접대 문화가 성(性) 산업을 지탱하는 주범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식 접대 문화는 우리 사회의 ‘끼리끼리’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한국 사회는 혈연ㆍ지연ㆍ학연으로 돌아간다”며 “이런 인연이 없다면 밥 사고 선물 주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접대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함께 흐트러지거나 성접대 등 은밀한 비밀을 공유해야 인간적으로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적 친분은 권력 관계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밑밥이 된다”며 “접대는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중장기적으로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미리 손을 쓰는 뇌물”이라고 지적했다.

접대의 명분으로 ‘소통’을 내세우지만 정작 접대 자리에서 원활한 대화가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접대는 명확한 갑을 관계가 전제돼 있어 소통 보다는 수직적인 관계를 재확인하거나 을의 충성을 보여주는 자리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불합리한 한국식 접대 문화를 이제 김영란법의 시행에 맞춰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이 한국 사회가 좀 더 청렴한 사회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사실 김영란법으로 불합리한 관행들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그 동안 공직자들이나 언론인들은 해외 출장을 갈 때 초과되는 수하물도 공짜로 싣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특가 항공권에 예약 대기를 걸어놓은 뒤 확약을 요청하거나 심한 경우 무료 항공권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관행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거절할 강력한 명분이 생겨 다행스럽다”고 덧붙였다.

불합리한 접대 문화를 바꾸려면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납품과 인허가 과정이 인간적인 관계보다 객관적 기준에 따라 진행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칼자루를 쥔 사람과의 친소관계 보다 실력, 업무, 제품의 품질 등이 공정하게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계에 기름을 치듯 내부자의 협조가 있어야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구조가 문제”라며 “접대 문화가 업무 처리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부ㆍ기업ㆍ학교와 관련된 각종 규정들도 김영란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함께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영화 ‘내부자들’ 한 장면
영화 ‘내부자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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