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폐 채석장이었다가 문화예술단지로 바뀌어 2009년 시민에게 개방된 경기 포천시 신북면의 ‘포천아트밸리’는 여느 경치 좋은 유원지와 다른 점이 있다. 짙은 비취색을 띠는 호수 ‘천주호’를 둘러싼 50m 높이의 절벽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1억8,000만~3,000만년 전 공룡들이 살았던 쥐라기 시대에 기원한 화강암이라는 사실이다. 단층 곳곳에는 철분이 풍화작용으로 까맣게 흘러 내린 자국이 있다. 2일 이곳에서 만난 김흥환(58) 포천시 지질공원 해설사는 “화강암은 강도가 단단하기로 유명해 국회의사당이나 법원 건물 자재로 주로 쓰였다”며 “현장 학습을 와서 이런 역사를 알게 된 학생들은 지구과학에 관심을 갖게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4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는 장성철(57)씨도 “특이하게 생긴 바위로만 알았지 이토록 나이가 많은 보물인지 몰랐다”며 “다른 관광지보다 기억에 더 남을 것 같다”고 감탄했다. 이곳은 환경부가 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한 ‘국가지질공원’이다.
환경보존 구역이면서 교육ㆍ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지질공원’이 주목되고 있다. 지질공원이란 지질학적으로 연구ㆍ교육 가치가 높고, 경관이 뛰어나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 가능한 공원. 자연공원법에 따라 2012년부터 환경부가 인증을 하고 있다. 한탄ㆍ임진강 지질공원, 제주와 울릉도ㆍ독도, 부산, 청송 등 국내에는 모두 7곳의 국가지질공원이 있다. 환경부는 2022년까지 국내에 지질공원 17곳을 인증하고, 이중 8곳을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 받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자체들이 지질공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까다로운 규제 없이도 지역 홍보에 활용할 가치가 있기 때문. 국립공원과 지질공원은 모두 법적으로 ‘생태계 보존’이라는 목적으로 지정되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일대에 시설 건립 등이 제한된다. 반면 지질공원은 규제가 전혀 없어 민원 발생 소지가 없다. 임우상 포천시 문화유산팀장은 “명소 위주로 관리하면 되기 때문에 넓은 지역을 신경 써야 하는 국립공원보다 부담이 적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질공원을 통해 국가브랜드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네스코의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으려면 국가지질공원 지정 뒤 운영기간 1년을 거쳐야 한다. 현재 세계지질공원은 120곳으로 이 중 아시아는 46곳이다. 중국(33곳)이 가장 많고 일본이 8곳이다. 국내에는 국가 지질공원제도가 생기기 전인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이미 인증 받은‘제주지질공원’이 유일하다. 한국은 국토는 좁지만 화산활동과 공룡의 흔적, 고생대~신생대 암석 등 지질학적 다양성이 크기 때문에 목표인 8개 지역이 유네스코 인증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질공원 인증은 문화ㆍ역사 유적에 비해 일반인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질 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예컨대 제주 한경면 수월봉은 여러 화산활동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지만 지질학자들만 찾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2012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면서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 2012년 7만7,000명 수준이던 수월봉 방문객은 2015년 31만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환경단체는 지질 유산의 보존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난개발을 우려하고 있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사회팀 국장은 “생태계 보호를 위한 규제 조치가 전무하다면 결국 관광사업을 위한 투자유치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며 “‘자연생태계와 문화경관 등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도모’하도록 한 자연공원법 취지에 맞게 신중히 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천=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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