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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 “다시 국민의 감시견이 되고 싶습니다” MBC 해직기자 박성제

입력
2017.06.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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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부활시키는 일을 저에게 맡겨 준다면 뭐든 할 것 같아요.”

지난달 31일 서울 양재동 쿠르베스피커 공방에서 만난 박성제 기자, 아니 기자였던 박성제 대표는 ‘다시 MBC 기자로 복직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다시 뉴스를 만들든, 조직 개편에 몸 담든 MBC를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다는 답변이다.

공영방송 MBC에서 해직된 지 5년, 그 동안 그의 직함은 ‘MBC 기자’에서 ‘쿠르베 스피커 대표’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손수 대패를 들고 나무를 깎아 스피커를 만드는 순간에도 늘 다시 ‘기자’로 불리는 날을 기다려왔다.

해직 이유는 폐쇄회로(CC)TV에 찍힌 사진 한 장

19년 차 기자의 해고는 달랑 휴대폰 문자 메시지 하나로 이뤄졌다. 2012년 6월 20일, MBC 인사위원회는 박성제 기자와 당시 ’PD수첩’ 담당 피디(PD)였던 최승호 뉴스타파 PD를 해고했다. 사유는 불분명했다. 인사위원회는 이유를 묻는 박 기자에게 사진 한 장만 내밀었을 뿐이다. 사진 속에는 회사 앞 광장에서 야간 집회를 벌이는 후배들을 바라보는 박 기자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2012년 1월 25일, MBC 노조는 불공정 보도를 바로 잡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대대적 파업을 시작했다. 2010년 MBC 보도국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재철 전 사장이 내정되자 뉴스 보도의 정치적 편향을 우려했다.

그리고 이는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이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관련 의혹, ‘나 도지산데’로 화제가 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소방관의 통화내용 등이 ‘뉴스데스크’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4대강 사업 문제를 취재한 PD수첩도 결방됐다.

급기야 MBC 기자들은 2011년 말 열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집회현장을 취재 하다가 시민들에게 욕을 먹고 쫓겨났다. 2008년 PD수첩의 광우병 심층 보도로 ‘공정방송’이라고 응원을 받은 지 불과 3년 만에 편향 보도를 일삼는 소위 ‘엠빙신’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든 박 기자의 후배 박성호 기자가 아침뉴스 앵커 자리에서 잘리면서 기자와 PD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MBC에서 해고된 다음날인 2012년 6월 21일 박성제(오른쪽) 기자와 최승호(왼쪽) PD가 서울 여의도 MBC사옥 앞에서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성제 기자 제공
MBC에서 해고된 다음날인 2012년 6월 21일 박성제(오른쪽) 기자와 최승호(왼쪽) PD가 서울 여의도 MBC사옥 앞에서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성제 기자 제공

MBC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파업은 노조의 패배로 끝났다. 회사는 파업을 주도한 박성호ㆍ이용마 기자, 정영하 PD 등을 잇달아 해고했다. 박성제 기자 역시 전직 노조위원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파업 주도세력으로 몰려 해고됐다.

이들의 해직 사유는 ‘불법파업’. 근로조건이 아닌 공정보도를 이유로 파업해 회사의 영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공정보도가 없다면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할 MBC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흔한 남자기자’가 지킨 최소한의 양심

“이제는 후회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많이 했지만...”

박 대표는 2007년 MBC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하고 싶어서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 노조위원장으로 나설 사람이 없자 선배들이 인맥 넓고 수더분한 그를 추천했다. 이듬해 그는 광우병 의혹 보도로 검찰 수사대상이 된 후배들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서는 등 많은 일을 겪었다.

그렇다고 박 대표는 원래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도, 앞서서 투쟁하는 투사도 아니었다. 노조위원장이 되기 전까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기자” 였다. 운동을 좋아하고 취재원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을 즐겼다. 특종을 많이 한 기자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주변에서 ‘기사 좀 쓸 줄 안다’는 소리는 들었다”며 웃었다.

그렇지만 기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입사 4년차인 1997년, 한 대기업 회장의 비리를 취재했지만 보도국장이 방송을 막자 1인 파업을 했다. “신입 시절에 기자는 힘 센 놈들과 싸우는 직업이라고 배웠고 당시 MBC는 그런 언론정신이 살아있던 방송이었죠.”

2003년 경제부 시절 박성제 기자가 도쿄에 출장을 가서 뉴스리포트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2003년 경제부 시절 박성제 기자가 도쿄에 출장을 가서 뉴스리포트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해고 후 그를 위로해 준 것은 음악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작은 라디오를 선물받은 뒤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기타를 배웠고 대학에서 음악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것도 합격하면 오디오 시스템을 사 주겠다는 아버지와 ‘빅딜’을 한 덕분이다.

기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때 그 시절의 취미는 지금도 해직기자 박성제에게 버팀목이 됐다. 가족들에게 쇼파에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목공을 배웠는데 재미가 붙어 나무 고유의 질감을 살린 수제 스피커 제작에 도전했다.

그는 숱한 오디오 애호가들이 그렇듯 자주 스피커를 교체하는 ‘스피커질’에 빠졌던 만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이때 평소 자주 들리던 인터넷 동호회 DVD프라임을 통해 스피커 제작 기술자를 알게 되면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원형의 ‘쿠르베 스피커’가 탄생했다. 둥그스름한 스피커 모양은 박 대표가 직접 디자인했다.

쿠르베 스피커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뛰어난 만듦새 덕분에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 널리 인정받는 기기가 됐다. 박 대표는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는데 아름다운 스피커를 만들어 낸 사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복직이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목공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달 지나 회사에 돌아갈 줄 알고 시작했는데 벌써 4년이 흘렀다. 그는 복직만 된다면 쿠르베 스피커는 동료에게 맡기고 다시 취재현장으로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MBC, 고쳐 써야 하는 이유

박 대표는 언론계를 떠난 뒤 이전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봤다. 지난 몇 년 간 뉴스 수용자들은 인공지능(AI)인 ‘알파고’처럼 똑똑해졌고, 언론인들의 논평은 예전의 권위를 잃었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 등을 겪으면서 언론을 대하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졌습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관심 뉴스만 소비하고 자기 분야에 전문성이 높아졌지요. 기자가 섣불리 보도하면 금방 약점이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언론이 신뢰도를 높이려면 “정확한 취재와 심층 탐사보도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볼 때 지금의 MBC 뉴스는 기본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지난 정권도 공영방송을 ‘정권방송’ 처럼 이용했기 때문이다. MBC노조는 지난 5월 “2015년 9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작성한 수첩에 ‘국정교과서’와 MBC가 같이 언급된 뒤 정부 입장만을 전달하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뉴스가 나갔다”며 정권개입을 의심하는 성명을 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싫어서 해직된 이후 되도록 MBC 뉴스를 보지 않았다. 그의 우려대로 ‘MBC뉴스데스크’는 지난해 시청률이 2%로 떨어졌다. 지난 겨울 촛불집회를 취재하던 MBC 기자들은 시민들의 비난을 피해 숨어서 취재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MBC를 다시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MBC는 원래 국민을 위한 감시견이지만 경영시스템이 민의를 잘 반영하지 못해 현재 이빨 빠진 개가 됐다”며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구성방식을 개선하고 국민이 원하는 훌륭한 언론인을 사장으로 선임하면 MBC는 다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 기자들은 지난 1월부터 서울 상암동의 MBC 사옥에서 피켓시위(오른쪽)를 했다. 촛불집회 당시 국민들에게 외면받은 것을 반성하고 편파 방송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해직된 뒤 MBC 사옥 출입이 거부된 박성제(왼쪽) 기자는 사옥 밖에서 피켓을 들고 후배들을 응원했다. 박성제 대표 제공
MBC 기자들은 지난 1월부터 서울 상암동의 MBC 사옥에서 피켓시위(오른쪽)를 했다. 촛불집회 당시 국민들에게 외면받은 것을 반성하고 편파 방송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해직된 뒤 MBC 사옥 출입이 거부된 박성제(왼쪽) 기자는 사옥 밖에서 피켓을 들고 후배들을 응원했다. 박성제 대표 제공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MBC 언론인들은 지난 정권 동안 공정보도를 위해 계속 시위를 했다. 파업 이후 해직과 좌천 등으로 조직이 흔들리다 보니 그들의 노력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 박 대표는 새 정권이 ‘촛불개혁 10대 과제’로 지난 정부의 언론 탄압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다시 희망이 생겼다. “지난 여름 이화여대생들이 농성을 시작했을 때 다들 왜 저러는 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싸웠고 마침내 학생들을 위한 총장을 직접 뽑았습니다. MBC 언론인들도 결정적인 순간까지 싸운다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언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최윤수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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