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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대립 시대 또 온 듯… 분열만 키운 역사전쟁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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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대립 시대 또 온 듯… 분열만 키운 역사전쟁 20일

입력
2015.11.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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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말바꾸기·밀실행정 논란 속

진보·보수 양극단으로 사회 두쪽

제대로 된 토론 한번 못한 채

정치권 볼썽사나운 막말 공방만

"갈등의 서곡일 뿐" 암울한 전망

지난 20일 동안 우리사회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졌다. 찬성과 반대를 요구하는 극렬한 이념 대치가 지속됐다. 중립ㆍ중도라는 가치는 설 자리가 없었다. 대신 ‘북한의 지령’, ‘적화통일’과 ‘유신회귀’, ‘역사쿠데타’라는 자극적인 막말과 일방적 주장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골고루 사람을 등용해 100% 대한민국 만들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역사학자 90%는 좌편향”으로 대변되는 ‘분열’로 변주됐다. 행정예고 이후 지난 20일을 ‘해방 후 극심했던 이념대립 시대’와 같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일이면 교육부가 지난달 12일 실행한 ‘중ㆍ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ㆍ검ㆍ인정 구분(안) 행정예고’가 종료된다. 교육부는 그간 접수된 국민 의견을 종합해 오는 5일까지 국정인지, 검ㆍ인정인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는 국정제 채택을 거스를 수 없는, 그 무엇보다 시급한 현 정부의 최우선 정책이라는 걸 지난 20일 동안 우리사회는 확인했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한 행정예고는 앞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밝혔던 “과격한 결론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무색케 했다. 곧바로 이어진 찬반 논란은 과열양상을 띠며 우리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 놓았다. 13일부터 연세대를 필두로 역사학자 및 역사학계에선 집필거부와 국정화 반대 선언이 잇따랐다. 지난달 30일 28개 역사학회가 참여한 국정화 반대선언까지 계속되며 거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와 별도로 교사, 시민사회단체, 대학생 등은 물론 중고등학생들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공교육살리기시민연합 등 보수 단체는 국정화 찬성 맞불 집회를 벌여왔고, 보수성향의 교수 102명도 지난달 16일 ‘올바른 역사교과서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념전쟁’의 보수 사수대를 자처했다.

3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경우회 등 보수단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연합뉴스
경우회 등 보수단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연합뉴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역사학자들과 제대로 된 토론회 한번 거치지 않는 등 대부분의 절차를 밀실행정으로 처리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달 2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국정화 논의ㆍ진행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일갈한 것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행정예고 이후 뒤늦게, 그것도 등 떠밀려 몇몇 학회에 간담회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인문역량강화 사업을 통해 역사학계를 지원하겠다고 무마를 시도했다가 역효과만 불렀다. 급기야 지난달 25일에는 행정예고 이전부터 서울의 모처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사전 정지하는 태스크포스(TF)를 비밀리에 운영한 사실까지 드러났고, 정부는 이에 대한 예비비 내역 비공개로 논란을 자초했다.

정부의 말 바꾸기는 불신과 분열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평가다. 애초 “국정 집필진은 모두 공개하겠다”던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이후 “집필진들이 거부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을 바꿨고, 황 부총리도 지난달 27일 “대표집필진만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거들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집필진을 꾸릴 것’이라는 예상과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지난달 27일 시정연설은 이념전쟁의 전면전을 알리는 ‘선전포고’로 평가된다. 앞서 2005년 한나라당 대표시절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의 몫”이랬던 박 대통령은 이날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아무런 토를 달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 발언은 국정화 반대세력에게는 반발을 불렀지만, 지지세력에는 세를 집결시켜, 결과적으로 국정화 찬반 갈등은 더 깊어졌다. 여당 수뇌부에서 “국정화 반대운동에 북의 지령이 있다 하니 수사해야 한다”(서청원 최고위원), “검정교과서 옹호는 북한의 적화통일 대비한 좌편향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정현 최고위원) 등의 고질적인 색깔론까지 제기하면서 갈등을 극으로 치닫게 했다.

정작 지금까지의 분열과 갈등은 아직 서곡에 불과했다는 전망도 심심찮다. 국정화 방침 확정고시 이후 새로운 교육부 장관 임명,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구성 및 그 내용 등을 예상해볼 때 이념전쟁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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