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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줄줄이 박중양(朴重陽)

입력
2014.10.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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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양(1874~1959년)이라는 인물이 있다. 1897년 관비장학생으로 도일해 1900년에 도쿄 아오야마학원 중학부를 졸업하고 도쿄 경시청에서 경찰제도연구생으로 경찰제도와 감옥제도를 연구 실습했다. 1903년 동경부기학교에서 은행 업무를 익힌 후 졸업했는데, 이미 당시에 야마모토라는 일본이름을 사용했다. 이듬해에 귀국해 일본군의 고등통역관 노릇을 하며 러일전쟁에 종군했다. 1905년에 농상공부 주사가 됐으나 대구에 1년간 거처했고 1년 후 군부기사가 돼 의친왕이 일본을 방문할 때 통역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대구군수 겸 경북 관찰사 서리가 됐다. 일제는 조선 사람들의 공간적 정체성의 바탕인 읍성을 가장 먼저 허물었다. 그래서 지금 온전하게 남은 읍성은 해미, 고창, 낙안 정도가 전부다. 그가 대구군수로 있을 때 대구읍성을 허물었다. 나라의 허락도 받지 않았다. 당연히 국법으로 다스려야 할 엄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처벌은커녕 중앙의 요직으로 승진했다. 이미 친일파들이 조정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후 승승장구 중추원고문까지 올랐던 대표적인 친일인사다.

이런 일이 과거에 국한할까?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사는 자신이 기소한 사건의 결과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무죄 평결이 난 건에 대해서는 감점을 받는다. 그건 기소독점권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이기도 하다. 사안이 심중하거나 그런 기소 건이 누적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시국사건 등 무리한 법 적용으로 기소해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돼도 견책은커녕 오히려 출세가도를 달린다. 기소해서 그 사건을 센세이션하게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권력자의 입맛을 맞췄으니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걸 믿고 기소독점권을 남용해 마구 기소한다. 판단편향이나 인지부조화가 난무할 뿐이다. 그런데도 권력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만 하면 승진한다. 그러니 후배 검사들이 그걸 보고 배운다. 박중양의 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검찰의 민낯이다. 그러니 ‘견찰(犬察)’이니 ‘개검’이니 하는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

공영방송을 통째로 망가뜨려 비판과 견제의 기능은커녕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사장들이 온갖 비리에도 불구하고 떵떵대며 살아간다. 자기네 방송이 기소돼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기소라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다. 그걸 착실하게 수행한 자들이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었다) 오히려 자기네 방송에서 사과하는 해괴한 짓도 태연하게 저지르면서도 의기양양했다. 뒷배를 봐주는 권력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들이 빠져나가고 새 인물이 들어오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지만 그건 우리의 순진한 생각일 뿐,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이제는 아예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부서 자체를 없애겠단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TV의 다큐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특히 좋아한다. 신비한 과학 탐구, 신기한 오지 탐험, 놀라운 사건과 인물, 그리고 주제에 대한 치밀하고 치열한 다큐 프로그램이나 중요한 사안에 대한 추적과 분석의 탐사 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시청료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 뉴스를 봐도 정작 중요한 건 빼먹거나 뒤로 돌려 작게 처리하고 날씨나 동물 이야기를 헤드라인에 두면서 시청자와 시민을 농락하는 꼴을 보면 꺼버린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처지가 한심하고 나 자신이 불쌍하고 울화가 치민다. 오죽하면 가장 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코미디거나 ‘무한도전’ 같은 예능오락 프로그램일까.

그런 고민을 간파한 것일까? 시사와 비판을 아예 예능에 맡기고 정작 그 역할을 수행하는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교양제작국을 없애겠단다. 전두환 군부독재 때도 이렇게 막가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추가 한참 뒤로 가는데도 이젠 별 반응도 없다. 그 대가로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방송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한이 될 것이다. 친일파 청산 제대로 못하니 온갖 잡귀들이 발호한다. 그런 자들이 보수 운운하니 이 나라 보수는 싸잡아 욕먹는다. 그런데도 좋단다. 박중양이 같은 자들만 살 판 났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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