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최저임금 상승이 해고 위협으로… 서글픈 고령 아파트 경비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최저임금 상승이 해고 위협으로… 서글픈 고령 아파트 경비원

입력
2016.03.11 04:40
0 0

간접고용 79%ㆍ단기계약직 95%

일과 휴식 경계 모호한 감시직

최저임금 오르자 휴게시간 늘리고

인건비 부담을 구조조정으로 해결

형편없는 처우ㆍ인간적 모멸감까지

서울 노원구 A아파트에서 5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용민(69ㆍ가명)씨가 10일 경비실 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김씨는 계약서상 하루 6시간을 쉴 수 있지만 잔업 탓에 실제 쉴 수 있는 시간은 2,3시간에 불과하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서울 노원구 A아파트에서 5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용민(69ㆍ가명)씨가 10일 경비실 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김씨는 계약서상 하루 6시간을 쉴 수 있지만 잔업 탓에 실제 쉴 수 있는 시간은 2,3시간에 불과하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서울 노원구 A아파트에서 5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용민(69ㆍ가명)씨는 교대 시간인 오전 6시가 다가오면 서있기조차 힘들다. 피로 때문이다. 김씨의 근무 형태는 ‘24시간 맞교대’. 근로계약서상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는 휴식 시간이다. 하지만 6㎡(1.8평) 규모 초소 내 간이 침대에서 김씨가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은 두세 시간에 불과하다. 밤 늦게 퇴근해 초소를 찾아오는 입주민들에게 택배도 건네고 아파트를 드나드는 외부 차량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김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58만원. 실제 근무시간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2016년 기준 월 126만원)에도 못 미친다.

처우도 형편 없지만 인간적인 모멸감도 견뎌야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화단에 떨어진 낙엽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리소장에게 경위서를 써냈다. 감시직인 김씨에게 청소는 의무가 아니지만 김씨는 관리소장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재계약 때문이다. 70세가 되는 내년에는 용역업체의 내규에 따라 김씨의 계약 기간이 1년에서 3개월로 더 짧아지고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김씨는 “금전적 손해보다 더 괴로운 건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라고 토로했다.

최저임금의 역설

대개 아파트 경비원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고령 남성의 생애 마지막 일자리다. 하지만 이 일자리는 힘겹고 때로는 굴욕적이기까지 하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10~12월 서울 25개 구 아파트 단지 내 경비원 455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원 근무 형태의 경우 격일제 24시간 교대제가 96.6%를 차지했다. 주 업무인 방범과 안전점검에 투입하는 시간은 근무시간의 28.6%뿐이었고 택배 관리(20.2%), 주변 청소(19.3%), 주차 관리(16.3%), 분리수거(16.2%) 등 부가 업무에 나머지 시간들을 사용했다.

보장된 휴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휴게 시간에 근무지 밖에서 자유롭게 쉰다고 응답한 경비원은 고작 9.1%였고 근무지 안에 머물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대처한다는 응답자는 63.5%나 됐다. 휴게 공간이 없어 근무 초소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이도 57.8%였다. 이들의 평균 월급은 약 149만원으로 지난해 최저임금(116만원)을 조금 넘었다.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노동 환경은 열악해졌다. 본래 경비원 같은 ‘감시단속 노동자’에겐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다가 2007년(70%)에 처음 적용된 뒤 순차적으로 인상됐다. 그러나 임금 상승은 외려 해고 위협으로 돌아왔다. 인건비 상승 부담을 업체 측은 경비원 구조조정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자 늘어난 것은 ‘쉬지 못하는 휴게 시간’이었다. 업체들이 휴게 시간을 늘려 명목상 근로시간을 줄이는 편법을 쓴 것이다.

간접고용의 굴레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이들의 임금이 늘지 않는 역설은 일과 휴식 간 경계가 모호한 감시직 특성 탓이 크다. 근로기준법은 경비원처럼 감시를 주 업무로 하고 정신적ㆍ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로 ‘감시직 근로자’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들은 고유한 업무 수행은 물론이고 주차된 차량 밀기, 눈 치우기, 무거운 물건 들어주기 같은 부수적인 업무에 시달린다.

이렇게 불합리한 대우를 경비원들이 참아야 하는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직이기 때문이다. 2012년 노원노동복지센터가 노원구 아파트 경비원들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 조사 결과 79.1%가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었고 94.6%는 단기계약직이었다. 절대 다수의 경비 노동자들이 헌법상 보장되는 노동조합 결성에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은 고용이 불안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다. 부산 사하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이모(66)씨는 “억울하면 나가란 식이어서 목소리 한 번 못 내고 계속 근무지를 옮겨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고용을 더 흔드는 건 경비 무인화 추세다. 신규분양 아파트들뿐 아니라 기존 단지들까지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면서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김순희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은 “대표적인 한국 남성들의 은퇴 후 일자리마저 대기업(계열 경비시스템 업체)이 잠식하면서 서민들 삶이 위협당하고 있다”며 “경비원 고용 문제를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노인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 나서자

급선무는 근로 시간 단축이다. 경비원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장시간 노동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해법은 직접 고용이다. 불필요한 위탁 수수료를 줄이면(15~20%) 인건비 여력이 생겨 근로 시간이 줄어도 임금을 깎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8시간 3교대제로 근무 형태를 바꾸고 휴게 시간ㆍ공간을 보장해야 고령 경비 노동자들의 건강이 지켜질 수 있다”며 “입주민대표자회의에서 경비원 보호 방안 모색에 착수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고용보조금 조례 제정 등으로 이를 지원해주는 식으로 공동체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자체가 경비원의 업무를 입주민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야간에 보장되는 휴식 시간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초소에서 잠자고 있는 경비원을 보고 태업한다고 오해하는 입주민들이 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계약 연장 등 문제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경비원 대신 지자체가 초소나 엘리베이터 등에 안내문을 부착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