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혐의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 있다”
법원, 영장심사 16시간 반 만에 구속 결정
朴, 헌재 파면 선고 21일 만에 철창 신세
전직 대통령들 세 번째 구속 ‘불명예’
삼성동 법원 구치소 앞 朴 지지자들 탄식
檢 추가 수사과정서 혐의 늘어날 수도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결국 구속 수감됐다. 이로써 그는 지난해 11월 20일 검찰이 “대통령의 공모사실이 인정돼 피의자로 입건했다”며 이 사건 1차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 130일, 이달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대통령직을 잃은 지 불과 21일 만에 철창 신세까지 지게 됐다.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에 이어, 재임 중 비리로 구속된 역대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된 것이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전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이날 새벽 3시3분쯤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심사 종료 후 서울중앙지검 10층 임시 유치시설로 이동해 법원 판단을 기다리던 박 전 대통령은 영장이 발부되자 신변을 정리하고 오전 4시29분쯤 서울중앙지검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와 경기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차량에 탑승한 박 전 대통령의 얼굴엔 피곤함보다는 침통한 기운이 엿보였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삼성동 사저와 법원 부근, 서울구치소 앞에 대기하던 일부 지지자들은 탄식하며 비통해했다.
앞서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지검장)는 27일 그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 제3자 뇌물수수)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30일 오전 10시30분 시작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심사는 두 차례의 휴정을 포함, 오후 7시10분 종료돼 심사시간 ‘8시간 40분’이라는 역대 최장기록을 수립했다. 지난달 16일 이재용(49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의 2차 영장 청구 때 걸린 7시간 30분을 뛰어넘는 시간이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영장심사에서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는 동시에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검찰과 불꽃 튀는 공방을 벌였으나 끝내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는 총 14가지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그가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와 공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433억원(약속금액 포함, 실제 전달액은 298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원 강제모금 ▦최씨에게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 지시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정책 지시 ▦KTㆍCJ 등 민간기업 인사 부당개입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국정농단의 꼭대기에 있던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됨에 따라, 지난해 10월 본격화한 이 사건 수사도 5개월여 만에 정점을 찍고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그는 대통령 신분을 유지했던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검찰과 특검의 거듭된 대면조사 요청을 석연찮은 이유를 내세워 줄곧 거부해 왔다. 그러나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로 ‘현직 대통령’이라는 방패막이 사라지자 더 이상 소환에 불응하지 못하고 지난 21일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은 구속 만기(연장 포함 20일) 이내에 재판에 회부돼 향후 법정의 피고인석에도 앉아야 할 처지다.
다만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대기업들 가운데 롯데와 SK 등 ‘대가성 기부’가 의심되는 일부 기업들과 관련해선 검찰이 보완 수사를 진행 중이어서 그의 뇌물수수 액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특검의 ‘마지막 타깃’이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돼 검찰에 이첩했던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연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날 수도 있다. 선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를 이어,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취임했던 그의 추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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