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로 1,250원을 결제했다. 현금이 1만원짜리뿐이어서 잠시 고민하다 카드로 냈다. 소액을 카드로 결제하면 왠지 미안한 느낌이 든다. 수수료 부담 탓인지 ‘소액은 카드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안내문을 붙인 식당도 있다. 카드가맹점은 금융업법이 정한 의무수납제 탓에 소액결제라도 거절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수수료율 인하 정책으로 수익이 급감한 카드업계는 아우성이다. 고객이 연매출 2억원 이하 편의점에서 1,250원을 카드로 결제하면 카드사는 0.8%의 수수료 수익(10원)을 얻지만 카드승인 중계 업무를 대신해 주는 밴사에 결제금액과 무관하게 건당 120원을 내야 한다.
▦ 역마진에 시달리는 카드사는 의무수납제 폐지를 원하지만, 소액결제 흐름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고객이 현금 1만원을 내고 9,300원짜리 물건을 살 때 거스름돈 700원을 고객의 선불카드에 충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스웨덴 등 북유럽은 동전과 지폐를 포함한 현금결제 비중이 20% 안팎으로 여타 국가 평균(75%)보다 훨씬 낮다. 현금 대신 신용ㆍ직불카드와 금융거래 앱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 동전 퇴출의 가장 큰 목적은 비용 절감. 과거 구리 65%와 아연 35%로 이뤄진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만드는 데 40원이 들었다. 2006년부터 알루미늄에 구리를 씌워 만든 새 10원짜리 동전을 발행하면서 20원을 절감했다. 그래도 지난해 540억원이 동전 제조에 쓰였다. 주화 4종(10ㆍ50ㆍ100ㆍ500원) 중 10원과 50원짜리는 길가에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화폐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국가가 현금 제조 및 관리에 들이는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0.1~1.1%, 전체 가계소득의 0.3~2.0%로 추정된다.
▦ 핀테크(금융+IT)의 발달로 동전은 물론 지폐도 곧 사라질 운명이다. 실제 신용ㆍ직불카드에 이어 삼성 애플 등의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빠른 속도로 현금을 대체하고 있다. 그래도 3,000년간 인류와 함께 해 온 동전의 종말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어린이들에게 절약의 정신을 심어주던 빨간색 돼지저금통,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던 분수대의 낭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먹먹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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