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명절 연휴 기간 ‘양성평등’ 점수는 몇 점일까. 한국일보가 20대 국회 여성의원들에게 ‘며느리 의원의 설’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모두 50명. 이 중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이혼ㆍ비혼으로 현재 ‘싱글’인 의원 10명을 제외한 40명 중 39명이 참여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의원들이 매긴 점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45점으로 낙제점이었다. ‘0점’, ‘마이너스’를 적어내 명절 가사노동 불평등의 민낯을 고발한 의원들도 있었다. 8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준 일부 의원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30~50점 대를 적었다.
의원들이 ‘이렇게 바꾸자’며 꼽은 명절 문화는 무엇일까. ‘차례ㆍ상차림 간소화’, ‘음식 준비 남녀 분담’이 가장 많았다. 설문에 참여한 의원 중 33명(중복 답변)의 응답이다. 한 초선 의원은 “차례상을 차리다 보면 누구를 위한 차례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남편을 보면서 속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여자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한 3선 의원도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전을 그렇게 많이 부칠 필요가 있느냐”며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차례상은 간소화 하고 식구들 음식은 외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절 음식 준비만 간소화해도 ‘명절 스트레스’가 확 줄 것이라는 게 의원들의 생각이다. 한 재선 의원은 “엄청난 음식 준비 때문에 즐겁자고 모인 명절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주객전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만 둘인데 나중에 며느리를 맞게 되면 차례 음식은 대행 서비스에 맡길 생각”이라고 다짐하는 의원도 있었다.
일반 여성들의 여론도 다르지 않다.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생활체감정책단’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여성 응답자 중 ‘명절 상차림이 시대에 맞게 간소하게 변화됐으면 좋겠다’고 답한 비율이 76.3%에 달했다.
‘명절에 나도 친정에 가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현실에선 결코 쉽지 않은 희망사항을 말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반드시 시가에 먼저 가야 하는 법이 있느냐’는 반문이다. 12명의 의원들이 지적했다. “설에 시가에 먼저 갔다면, 추석에는 친정 먼저 가는 식으로 바꾸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의원들은 “나도 친정에선 귀한 자식인데 며느리 노릇 하느라 내 부모님은 뒷전”이라고 애달파 했다.
한 의원은 “명절에 시댁에 오는 시누이들까지 챙기고 나면 정작 나는 친정에 가지 못한다”며 “집안 분위기가 싸늘해질까 봐 친정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시댁의 큰집까지 다녀오고 나면 친정은 명절 다음날에야 간다”, “명절에 인사 오는 시아버님의 지인들 손님상까지 치러야 해 친정에 갈 새가 없다”, “1년에 큰 명절이 두 번인데, 한번 시가에 먼저 갔으면 다음 번엔 친정 먼저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며느리도 부모가 있는데 왜 시가 제사만 챙기고 명절도 시가에서 쇠어야 하나”… 여성 의원들의 한탄이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이지영ㆍ홍인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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