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지침에 '劉 나가라' 즉각 집단행동
박 대통령 심기 살피기에만 급급
'핵심 친박' 정치적 입지 강화 속내
스스로 거수기 전락 비판 잇달아
“집권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면 안 된다. 청와대 출장소로 비치는 정당은 공당의 모습이 아니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지난해 6월 당 대표 경선 출마선언문 중 한 대목이다. 당시 “동반자적 당청 관계를 설정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최근 별다른 설명도 없이 유승민 원내대표 저격수를 자처하며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고 있다.
김 최고위원의 변신은 냉정한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정치권에서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거부권 정국에서 “유승민 아웃”이라는 청와대 지침을 받자마자 스크럼을 짜고 집단행동을 하는 김 최고위원 등 새누리당의 일부 친박계 의원들을 향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국민들을 납득시킬 명분도, 이번 갈등을 영리하게 관리하려는 전략도 없이 이런저런 정치적 이해를 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 여권 분열로 모는 일부 친박계의 도 넘은 강공
친박계 맏형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사태 초반엔 유 원내대표를 감쌌다가 사퇴를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틀었다.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그는 29일 기자들을 만나 “유 원내대표의 대승적 결단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지금이 박근혜정부를 성공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보호해야 하지만 유 원내대표와 의리도 버릴 수 없다는 고심 끝에 나온 발언으로 해석됐다. 일부 친박계 중진 의원들도 언론 인터뷰 등에서 “안타깝지만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것이 당청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처럼 고민이 깊은 중진 의원들과 달리 몇몇 친박계 초ㆍ재선 의원들은 친위 돌격대처럼 행동해 여권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김태흠 의원은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가 사퇴를 거부하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퇴하게 하겠다”면서 “원내대표 재신임 논의를 위한 의총 소집을 요구하고 당 지도부가 사퇴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 압박을 위한 당 지도부 자진사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장우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미 원내대표의 위상이 실추됐고 역할이 불가능하므로 사퇴해야 한다”며 “사퇴 거부 시 의총 소집을 요구하고 최고위원들과 상의해 대처하겠다”고 말해 역시 실력 행사를 경고했다. 또 다른 일부 의원들은 익명을 전제로 한 언론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가 버티면 박 대통령이 탈당할 수밖에 없다”, “유 원내대표가 아예 정계를 떠나야 한다”는 극단적 공세를 폈다.
● 결국 내년 총선 공천이 목표?
여당 의원들이 표결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향해 “무조건 나가라”고 밀어내는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1인 헌법기관의 품위도, 책임도 저버리고 스스로를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길게 보면 이들의 과잉 충성이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하고 다음 총선ㆍ대선 승리를 위해 합리적ㆍ개혁적 보수가 목소리를 낼 공간을 아예 막아버릴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치권에는 유 원내대표 몰아내기에 앞장선 인사들 중 일부가 노리는 것이 결국 내년 총선 공천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주류에 눈 도장을 찍고 ‘핵심 친박계’라는 타이틀을 확보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정치권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권력투쟁을 통해 유 원내대표를 몰아내고 새누리당을 ‘친박당’으로 대변신시킨 이후 특단의 전략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다. 정치 분석가들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여권 프리미엄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을 끌어안고 총선과 대선을 치르려는 저의를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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