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들 치료비 절반을 수수료로
500만원짜리 수술 2억으로 둔갑도
中 부잣집 유학생까지 브로커 영업
"전화 몇 번에 실어다주면 수백만원"
검찰 수사과정에서 파악된 서울 강남 일대 성형 브로커들의 실태는 수사발표(본보 9일자 37면)로 공개된 것 외에도 천태만상의 불법 행위가 난무해 말 그대로 요지경 속 세상이었다. 성형 욕망에 사로잡힌 ‘눈먼 돈’을 놓고 브로커는 치료비의 절반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겼고, 병원은 병원대로 수수료를 벌충하기 위해 거액의 수술비를 중국인들에게 떠넘겼다.
9일 검찰에 따르면 강남 소재 대형 성형외과에 중국인 관광객(유커ㆍ遊客)을 알선한 중국인 브로커 A씨는 지난해 상반기 병원을 찾아가 “중국인 환자 수백명을 모아올 수 있다”며 진료비의 절반을 수수료로 요구했다. 거절할 경우 경쟁 병원에 손님을 데리고 가겠다는 은근한 협박도 했다. 그러나 수수료 약속을 받아낸 A씨는 곧 “수수료 일부를 떼어줄 테니 중국인들을 모아달라”며 다른 브로커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사실상 다단계 브로커 영업을 한 셈이다.
성형외과 직원 B씨는 브로커를 상대로 브로커 영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수수료를 20~30% 달라고 찾아온 브로커에게 더 많은 돈을 받게 해주겠다면서 다른 병원에 데리고 간 뒤 소개료를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20대 초ㆍ중반 유학생들이 국내로 들어와 브로커 아르바이트를 한 사례도 다수 포착됐다. 이 가운데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재력을 가진 법조인의 자제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병원에 전화 몇 번 하고 차로 (손님을) 병원에 실어다 주면 수백만원이 들어올 정도로 손쉽게 돈을 벌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인척의 성형수술을 알선해 주고 수수료를 챙긴 베트남 출신 국내 유명 사립대 조교수가 검찰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브로커에게 병원은 사실상 을(乙)의 입장”이라며 “브로커들이 수수료를 많이 주는 곳을 골라 다니며 ‘병원 쇼핑’을 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브로커 수수료가 올라갈수록 성형외과의 수술비 규모는 폭증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술ㆍ치료비에 대해 정해진 가격이 없어 중국인들에게 내키는 대로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수료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진료차트는 소각한 뒤 환자의 인적사항이나 간단한 수술내용만 기재해 놓는 ‘허위 차트’로 세무조사 등에 대비해 왔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 통상 500만~600만원 정도 하는 가슴성형 수술이 2억원의 초고가 수술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브로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제 나온 발언”이라고 전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중국의 내로라하는 고위급 인사는 물론, 탕웨이급 유명 배우도 와서 고가의 수술을 받고 갔다”는 진술도 했다. 해당 병원은 유명인의 수술이나 치료가 끝나면 진료차트에서 인적사항을 모두 지워 신분 노출을 막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자료 파기가 많은 만큼 수술ㆍ치료 비용을 부풀린 ‘바가지 요금’ 청구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조만간 강남 유명 병원들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에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의뢰하거나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속적인 수사를 통해 중국인 환자를 알선해 수수료를 챙기고, 고가의 치료비를 청구하는 성형외과들의 불법 관행을 뿌리뽑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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