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ㆍ대구서도 대규모 촛불시위
전통적 지지층 충성심 거둬
朴, 과거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땐
지지율 높았고 스스로 반성해
흔들렸던 지지층 돌아와
지금은 실체도 없는
샤이 지지층에 기대어
국민들 분노 자체를 부정
헌정 사상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되는 초유의 상황이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 진영의 얼굴색은 바뀌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예고된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으며, “엘시티 엄정수사”를 ‘지시’하고 한동안 뜸했던 순방외교 일정을 내놓았다. 시민들의 분노에 대해 친박 정치인들은 “촛불은 꺼진다”며 버티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공세로 돌아섰다. 이런 움직임 뒤에 여론조사에서는 잡히지 않는 이른바 ‘샤이 박근혜 지지층’에 대한 믿음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샤이(shyㆍ부끄워하는) 박근혜 지지층은 ‘샤이 트럼프’ 현상을 빗댄 개념이다. 샤이 트럼프 현상은 11월 9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가 538명의 전체 선거인단 중 306명을 확보해 승리한 것이, 여론조사가 내심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샤이 트럼프 지지층의 여론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 때문이란 얘기다.
언론들이 클린턴 패배 이유를 주로 샤이 트럼프 현상에서 찾고 있지만, 이 또한 검증된 결과가 아닌 예측 실패에 대한 임시방편적 해설에 불과하다. 우선 미국은 주별로 선거인단에 차등을 두고 있고, 대부분의 주에서는 한 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선거 제도다. 전국 지지율이 그대로 의석수로 전환되지 않으며, 선거인단이 많이 걸린 주별 승부에 따라 지지율과 크게 차이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게 된다. 결국은 경합 주의 판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상반된 예측을 하게 되며, 언론과 예측기관들은 여론조사 결과 자체가 아닌 자신들의 예측모델을 통해 주별 판세를 종합한 결과를 내놓게 된다.
선거 직전인 7일(현지시간) 발표된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공동여론조사는 클린턴이 트럼프 후보를 누르고 승리할 가능성을 90%로 전망했는데, 조사결과 자체는 클린턴 45%로 42%를 얻은 트럼프를 3%포인트 차로 앞서는 수준이었다. 앞서 3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중에서도 폭스뉴스는 클린턴 45% 대 트럼프 43%, 워싱턴포스트와 ABC 는 클린턴 49% 대 트럼프 47%, 뉴욕타임스와 CBS방송은 클린턴 47% 대 트럼프 43%로 역시 클린턴이 3%포인트 앞섰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USC대학 조사처럼 트럼프 47% 대 클린턴 43%로 트럼프가 앞선 결과도 나왔다. 정치분석 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모든 여론 조사를 종합해 평균 지지율을 산출한 결과에서는 클린턴 46.6%, 트럼프 44.9%로 1.7%포인트 격차를 보였다.(한국일보 “미 대선 클린턴의 불안한 우세” 11월 6일자)
확보한 선거인단 비율과 달리 최종 투표 결과의 전국 집계결과는 이러한 여론조사와 거의 일치한다. 전국적으로 클린턴은 6,350만여 표(47.8%), 트럼프는 6,180만여 표(46.58%)로 클린턴이 1.3% 포인트 더 많은 득표를 했다. 전국적 차원의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전국 판세를 상당히 정확히 보여 주었던 셈이다. 경합주들 역시 최종 결과를 보면 플로리다의 경우 트럼프 49.1% 대 클린턴 47.8%, 펜실베이니아는 트럼프 48.8% 대 클린턴 47.6%였고, 선거 이전 여론조사 보도들도 대부분 1~2% 격차로 트럼프가 우세한 결과를 보였다.
오차범위를 벗어날 정도의 샤이 트럼프 현상을 보인 곳이 많지 않았고, 결국 샤이 트럼프 효과는 전체 여론 판세를 좌우할 정도의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다. 영향을 미쳤더라도 2~5% 정도의 오차를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들은 선거 관전 포인트를 부각시키기 위해 샤이 트럼프를 침소봉대했고, 선거 예측에 실패한 기관들도 샤이 트럼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한국은 어떠할까? 박 대통령 지지율이 5%라는 것이 실제 대통령 퇴진을 반대하는 여론이 5%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박 대통령 지지율 측정은 국정을 잘했나, 못했나 하는 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통령 국정평가와 무관하게 정서적 지지를 유지하는 층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 방식인 것은 사실이다. 또한 대통령과 여당의 실정이 드러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체계적으로 조사에 응답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들의 응답률을 보면 최순실 사건 이전과 비교할 때 급격하게 하락한 경향을 발견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대통령 지지율이 40%였던 한국갤럽의 1월 8일 발표 조사의 응답률은 23%였고, 지지율 5% 시점인 11월 18일 발표 시점의 응답률은 24%로 큰 변화가 없다. 물론 반 박근혜 층에서의 응답률 상승이 지지층의 응답률 하락을 상쇄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정치적 반대층, 특히 젊은 세대의 응답률이 일관되게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 지지층(대구ㆍ경북, 5060세대)에서의 응답률 하락 폭은 전체적인 판세를 왜곡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
지난 19일 제4차 촛불 시위는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에서 분출했던 촛불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부산, 대구에서조차 대규모 촛불 시위가 진행되었다. 이들 지역은 반대로 야당 지지 성향의 시민들이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할 규모의 대규모 시위가 이뤄지고, 이에 동조ㆍ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들 지역의 전통적 박 대통령 지지층이 충성심을 거두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6개월 전 실시된 4ㆍ13 총선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했던 5060세대와 영남 유권자들의 지지 철회 현상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 박 대통령과 당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정체 불명의 샤이 박근혜 지지층이 아니라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이제는 기대를 접은 핵심 이탈자들이다.
백번 양보해서 샤이 박근혜 지지층이 다수 존재한다고 치자. 과연 박 대통령과 친박의 기대처럼 이들은 시간만 흐르면 돌아올까?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과거 당 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던 박 대통령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및 재보궐 선거 대패로 위기에 처했을 때를 복기해 보자. 2004년에는 탄핵 결정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며 ‘천막당사’를 이끌며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2012년 총선 때는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라는 파격적인 자기개혁으로 국민들에게 읍소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지금보다는 훨씬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비판을 수용하고 반성하며 행동을 보였다. 그런 뒤에야 흔들렸던 지지층부터 돌아왔고, 점차 중간층까지 지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실체가 분명하지도 않고, 대세에 영향도 없는 가상의 샤이 박근혜 지지층을 근거로 해 국민의 분노 자체를 부정하려 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1차 옐로카드를 받고도 애정을 갖고 있는 지지자들 기대마저 저버렸다면, 이제는 누구라도 레드카드를 꺼내 들지 않겠는가.
그 누구보다 대통령을 사랑했고 열성적으로 지지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지지자들의 심정을 역지사지해야 한다. 빚진 것은 박 대통령이지, 이들이 아니다.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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