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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러려고 일본과 군사정보협정 맺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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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러려고 일본과 군사정보협정 맺었나

입력
2017.04.0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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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원산 미사일 발사 궤적 못 잡아

일본에 정보 공유 매달리며 굴욕

신호정보 주고 받을 전용선도 없어

위기상황서 신속한 대응 가능할까

한민구(오른쪽)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지난해 11월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국방부제공
한민구(오른쪽)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지난해 11월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국방부제공

“한국 정부가 오늘 아무 발표도 못할 걸요.”

지난달 22일 북한이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장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필 미사일이 발사 직후 몇 초 만에 폭발하면서 우리 군의 레이더로 궤적을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미사일이 솟구쳐 대략 2분은 지나 공중에 떠 있어야 지상의 그린파인이나 해군 이지스함의 레이더가 잡아낼 수 있는 탓이다.

반면 일본은 우주에 띄운 정찰위성으로 내려다보면서 발사 전후의 상황을 상당부분 포착한 상태였다. 당연히 우리는 정보공유를 요청했지만, 일본은 짐짓 모른체하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외교 소식통은 1일 “일본측은 ‘우리의 감시자산으로 파악한 정보여서 한국에 줄 수 없다’며 마치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면서 “한마디로 굴욕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본의 장담은 맞아 떨어졌다.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오전7시49분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10시30분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고, 11시5분 일본 언론이 첫 기사를 내보냈다. 그 사이 우리 군에 문의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는 애매한 답변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미 태평양사령부가 “북한이 미사일 1발을 발사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두루뭉실하게 발표하자, 같은 내용을 문자로 기자들에게 공지한 게 전부였다. 북한이 어떤 미사일을 쐈는지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지만 이날 군 당국의 공식 브리핑은 없었다.

우리 군은 왜 벙어리가 됐을까. 지난해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할 때만 해도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북한이 걸핏하면 미사일을 쏘는 원산지역의 경우,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데 한계가 많은 사각지대에 속한다. 영상정보를 수집하는 금강정찰기의 작전반경에서 벗어나 있고, 신호정보를 잡는 백두정찰기만으로는 정보의 완결성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우리 정찰자산을 띄워 원산 일대의 북한 해안 가까이 접근하자니 위험이 적지 않다.

반면 일본은 정찰위성 5기로 북한의 특정지역에 대한 집중 감시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일본은 북한의 신호정보를 파악하는데 강점을 갖고 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은 서해에 전력을 집중시킨 우리와 달리, 일본은 북한에 대응해 동해상에 주요 전력을 배치해 원산의 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인근 신포에서 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을 신속하게 포착할 수 있다. 군 소식통은 “일본과 GSOMIA를 체결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북한의 SLBM 위협을 꼽아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일본의 정보를 우리가 적기에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문제는 일본이 파악한 신호정보를 곧바로 주고받을 전용선이 아직 설치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합참과 일본의 통합막료감부 사이에 직통전화가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주고 받는 것과는 정보의 질과 양에서 차이가 클뿐더러 전화는 감청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극히 비상시에만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GSOMIA 체결 이후 일본과 군사정보를 어떻게 교환하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방식인데, 사람을 통해 밀봉한 봉투를 직접 주고 받는 ‘문서 수발’이 가장 선호된다. 고리타분하게 보이지만 비밀을 가장 확실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 내부에서도 정말 중요한 문서는 이런 식으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양국 대표가 회의 등을 계기로 만나 현장에서 내용을 공유하는 형태다. GSOMIA 체결 한달 후인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한미일 3국간 안보토의(DTT)라는 회의를 열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일본과 직접 정보를 교환했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당시 회의장에서 교환한 정보는 2017년에 예정된 양국의 군사훈련 일정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일본과의 정보공유는 철저한 상호주의가 원칙이다.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정보를 달라고 애걸복걸해도 대등한 가치로 맞바꿀 정보가 마땅치 않거나, 일본이 아예 거부하면 그만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측 요청에 응한다 해도 일본이 정보를 문서로 만들고 밀봉해 다시 인편으로 전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상황에서 얼마나 효

과를 발휘할지 의문이다.

물론 혈맹인 미국의 군사정보를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바에야 상당수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방부가 공언했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일본과 서둘러 GSOMIA를 체결할 필요가 있었을까.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마치 만병통치약인양 미화됐던 한일 GSOMIA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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