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ㆍ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시작된 3일부터 베이징(北京) 하늘은 온종일 희뿌연 스모그로 뒤덮였다. 지난해 양회 시작일에 맞춰 스모그가 사라지면서 ‘양회 블루’라는 말이 회자된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그야말로 ‘양회 그레이’인 셈이다.
AQI는 며칠째 ‘300+’… 우울한 베이징
베이징 시민들의 핸드폰에는 거의 예외없이 공기질지수(AQI)를 표시하는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다. 기상국에서도 시시때때로 현재의 온도와 습도, 풍향과 풍속, 대기오염 정도, 날씨에 따른 생활패턴 제안 등을 문자메시지로 알려준다. 겉으로만 보면 나름대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죽음의 먼지’로도 불리는 PM2.5(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다. PM2.5는 황사와 달리 산업현장이나 자동차에서 배출된 오염물질로 카드뮴과 납 등의 중금속 성분까지 포함돼 있는 1급 발암물질이고, 우리 몸에서 필터 역할을 하는 코털이나 점막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폐 깊은 곳이나 혈액으로까지 침투할 수 있다. 예보나 경보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이미 PM2.5 농도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을 만큼 악명이 높다. 중국의 500대 도시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치를 충족시키는 도시는 4개 뿐이다.
지난 2일 오후부터 200㎍/㎥ 안팎을 오르내리던 PM2.5 농도는 3일 오전부터는 아예 ‘300+’로 나타났다. WHO 기준치가 24시간 평균 25㎍/㎥이니까 12배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 수십 시간째 이어진 것이다. 다른 경로로 확인한 수치는 350~400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고, 경우에 따라선 400을 넘어가기도 했다. 실제로 3일과 4일 베이징 시내에선 불과 한두 블록 앞에 있는 대형빌딩의 윤곽조차 희미할 정도였다.
중국에는 ‘정서 감기’ 환자들이 꽤 많다. 스모그로 인한 우울증과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다. 기관지가 약한 어린이나 노인 환자들이 급증하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해 12월엔 한 화교 출신 캐나다인이 로키산맥의 청정공기를 캔에 담아 129위안(약 2만3,000원)에 판매했는데 나흘만에 5,000캔이 동이 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젊은층과 네티즌들은 자조섞인 패러디나 환경당국 비판 등을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너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너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거리다”는 풍자글이 유행하는가 하면 유명곡의 가사를 개사한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스모그로 인해 희미해진 유명 건물의 윤곽을 그려넣은 사진들도 많다.
환경당국, 처벌 강화ㆍ차량 통제 등 안간힘
중국이 스모그로 인해 겪는 경제적인 피해와 사회적인 손실은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질병이나 노동력 감소와 같은 직접 비용만도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150조원 규모, 치료비 같은 간접비용까지 포함하면 500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폐암 사망자 수가 무려 465%나 증가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여기에 중국의 최대 고민 중 하나인 빈부격차 문제가 겹쳐지면서 스모그가 사회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집에서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고 생수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정도로 여유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염된 물과 공기에 의존해야 하는 빈곤층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내에서 2013년 환경오염 문제를 방치할 경우 체제의 위협 요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회람됐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중국 정부는 올해 들어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인 대기오염예방조치법을 시행하고 있다. 50만위안(약 9,500만원)에 불과했던 벌금을 수익의 50% 또는 사회적 손실의 3배까지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오염사고를 냈을 경우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는 정도의 강력한 조치다.
베이징시는 이미 차량 홀짝제를 시행하고 있고, 신규 차량 등록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추첨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환경당국은 이달 말부터 베이징과 텐진(天津), 허베이(河北)성 4개 도시 등 징진지(京津冀, 베이징ㆍ톈진ㆍ허베이의 약칭) 6개 도시에 대해 통일된 적색경보 발령 기준을 적용키로 하는 등 제도 정비에도 나섰다.
이번 양회에서도 환경문제는 주요 화두 중 하나다. 개막에 맞춰 강력한 스모그가 베이징을 뒤덮음에 따라 상징성도 커졌다. 왕궈칭(王國慶) 정협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스모그 대응은 인민전쟁이자 지구전”이라며 “무책임하게 오염물을 배출하는 기업의 야만적인 생산방식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열린 31개 성(省)ㆍ시(市)의 지방 양회에서도 관할 지역의 공기질 개선 계획 수립과 각 오염원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제ㆍ저감 대책 등이 논의됐다. 허베이성은 PM2.5 수치를 2013년 대비 40%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베이징에서는 주된 겨울철 난방연료인 석탄의 비중을 줄이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키로 했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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