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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신었을까? 백제 금동신발 출토 '금방 벗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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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신었을까? 백제 금동신발 출토 '금방 벗은듯'

입력
2014.10.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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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 龍장식·바닥 도깨비 문양은 왕족 전유물

백제가 마한 토착세력에 준 하사품 추정

마한지역서 나온 17점 중 부식 없이 가장 온전한 유물

토기·장신구 등 유물 다수, 가야·신라와도 교류한 듯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23일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羅州 伏岩里 古墳群·사적 제404호)과 인접한 정촌 고분(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에 관한 발굴조사 결과 완벽한 형태의 백제계 금동 신발 등 마한시대 수장층의 돌방무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다수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돌방무덤에서 발굴된 금동 신발 모습.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23일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羅州 伏岩里 古墳群·사적 제404호)과 인접한 정촌 고분(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에 관한 발굴조사 결과 완벽한 형태의 백제계 금동 신발 등 마한시대 수장층의 돌방무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다수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돌방무덤에서 발굴된 금동 신발 모습.

옛 백제ㆍ마한 지역에 위치한 돌방무덤에서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백제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학계는 이 신발을 5, 6세기 마한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한 백제가 기존 토착세력을 회유하기 위해 전달한 하사품으로 보고 있다. 무덤에서 함께 출토된 토기와 장신구 등은 가야와 신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고대 한반도 남부 지역의 교류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전남 나주시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404호)과 인접한 정촌 고분(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을 발굴 조사한 결과 백제계 금동신발을 비롯한 다수의 유물을 확인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정촌 고분을 발굴한 결과 돌방무덤(석재를 쌓아 만든 무덤), 돌덧널무덤(지하를 파서 직사각형 덧널을 짠 무덤), 옹관묘(항아리를 맞붙여 관으로 쓰는 무덤) 등 총 9기의 무덤을 확인했으며 이 중 돌방무덤 3기의 내부를 올해 조사해 금동신발, 금제 귀걸이, 금제 장신구, 화살통 장식, 화살촉, 옥, 토기, 석침(石枕ㆍ돌베개), 개배(蓋杯ㆍ뚜껑 접시) 등을 출토했다고 밝혔다. 이 중 금동신발이 출토된 1호 돌방무덤은 최대 길이 485㎝, 너비 360㎝, 높이 310㎝ 규모로 현재까지 발굴된 백제ㆍ마한 초기 돌방무덤 가운데 가장 크다.

연꽃무늬와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 백제 금동신발의 바닥면과 출토 당시 모습. 금동신발이 발견된 정촌 고분 돌방무덤 내부에는 화살통 장식, 칼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있었다. 연합뉴스ㆍ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연꽃무늬와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 백제 금동신발의 바닥면과 출토 당시 모습. 금동신발이 발견된 정촌 고분 돌방무덤 내부에는 화살통 장식, 칼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있었다. 연합뉴스ㆍ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금동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 크기로 발등 부분에 용모양의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 금동판 덮개가 부착된 것이 특징이다. 신발 바닥을 연꽃과 도깨비 문양으로 장식한 것도 특이하다.

금동신발은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 전북 고창군 봉덕리 등 고대 고분에서 발견된 적이 있지만 대부분 훼손된 채 출토됐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금동신발은 일부 장식이 뒤틀린 것 말고는 부식이 없는 온전한 상태로 출토됐다. 오동선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마한지역에서 출토된 총 17점의 금동신발 중 상태가 가장 좋은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완벽한 보존 상태 못지않게 유물이 갖는 역사적 의미 또한 크다. 신발 바닥 중앙의 연꽃 문양 장식은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한 뒤 중앙에 꽃술을 새겼고 그 주변에 도깨비 문양을 추가했다. 이 같은 장식은 백제가 받아들인 불교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 오 연구사는 “금동신발을 통해 백제와 마한지역 토착세력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며 “백제에게는 토착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국가를 통합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이고, 토착세력에게는 자신의 위세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도깨비 문양은 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백제 왕족의 장송의례용품에 자주 등장하는 문양이라는 점에서 무덤의 주인이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왕족의 전유물이었던 용 문양이 지방 토호세력의 무덤에서 발견됐다는 것, 그것도 당시 정치적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장송의례에 사용됐다는 점에서 무덤 주인과 백제 왕족과의 관계 등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학자는 독자적으로 강한 힘을 지녔던 마한 토착세력이 금동신발을 직접 제작했다고 주장하는 등 학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연구소는 이날 금동신발 외에 정촌 고분에서 발견된 고리칼, 금제 장신구, 토기 등을 공개했다. 이들 유물은 전북 남원시 두락리ㆍ월산리의 가야계 석곽과 경북 경주시 황남대총 등에서도 확인돼 고대국가 간의 정치적 관계를 설명하는 단초가 될 전망이다. 이상준 나주문화재연구소장은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뿐 아니라 가야, 신라와도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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