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보유액 세계 6위 수준, 경상흑자 등 펀더멘털은 튼튼
외국인, 주식보다 채권 투자 많아… 당장 금리 따라 올리지 않아도
해외자본 급속 유출 없을 것
일각선 "단기 채권 투자금 유출 땐 원화 가치 낮춰 환율 경쟁서 유리"
지난주 한국은행의 전격 기준금리 인하(연 1.75→1.5%)로 현재 제로 수준(0~0.25%)인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1.5%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당장 미국이 하반기 기준금리를 올리면 이 차이는 더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우리 당국은 “기계적인 추격 인상은 없다”며 이례적인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과 적정 수준의 금리차이(일명 내외금리차)가 ‘정상’으로 여겨졌던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리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22일)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작심 발언’(“올해 안 어느 시점에 기준금리 목표치 상향 조치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후 미국의 연내 금리인상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최근 마이너스로 드러난 미국의 1분기 성장률(-0.7%)에도 불구, 시장에선 올해 남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6, 7, 9, 10, 12월) 가운데 Fed의 경제전망 수정발표와 기자회견이 있는 9월 또는 12월 중 금리인상이 단행될 거란 전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글로벌 경제환경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 외국인 투자금 유출입에 특히 민감한 국내 금융시장 특성상, 급격한 자본유출을 막으려면 기민한 대응이 필수라는 인식이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통화(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정책(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당국 수장들은 이미 여러 차례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따라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마이 웨이’를 강조했다. 이주열 총재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난 12일에도 “향후 경기회복세가 미흡하면 금리 기조 조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 수장들의 자신감에 근거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과거의 경험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중반,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도 한국은 각각 9~12개월의 시차를 두고 뒤따라 금리를 인상했지만 두 기간 모두 외국인 투자금은 순유입이었다”며 “표면적인 금리 차보다는 당시의 경제 체력(펀더멘털)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우리 경제의 외환 면역력은 과거보다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6위의 외환보유액(5월말 기준 3,715억달러)은 물론,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경상흑자 규모(2015년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흑자 비중 3.6%ㆍ작년 11월 무디스 추정치)도 든든한 방어막이 될 전망이다.
국내 외국인 채권투자금의 절반(작년 9월 현재 46%)을 차지하는 해외 중앙은행들의 ‘장기투자’ 성향도 급격한 자금유출 우려를 막는 요소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올 초 보고서에서 “설사 증시에서 외국인 탈출러시가 벌어진다 해도, 2011년 이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금 중 채권(573억달러)이 주식(230억달러)보다 훨씬 많아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특히 요즘처럼 금리를 천천히 올리겠다는 다짐까지 명확한 상황에선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고 말했고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금리변동에 더 민감한 채권 투자금도 환헤지 비용을 충당할 만큼 금리차이가 확실히 벌어져야 이동이 가능한데 미국이 예고한 금리인상 속도를 감안하면 큰 유출 위험은 없어 보인다”고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더했다.
일각에선 당국의 자신감을 최근의 원화강세 여건과 연관 짓기도 한다. 엔저 등의 여파로 수출타격 우려가 높은 가운데,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일부 빠져나가는 투자금이 원화가치를 낮춰 환율경쟁에서의 불리함을 다소나마 해소해 줄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주식 투자금은 기업의 수익성 여건에 더 좌우되겠지만 단기 채권투자금이 일부 빠져나가면 우리 환율여건 개선에도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섣부른 자신감에 대한 경계감도 여전하다. 소규모라도 자본유출(1차)이 생기면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을 피하려고 추가 유출(2차)이 생길 수 있고, 신흥국 전반에 투자 철수 바람이 불면 우리 펀더멘털과 무관한 또 다른 유출(3차)도 배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통상 점진적으로 들어왔다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위험회피 성향의 투자금이 예상보다 큰 충격이 될 수도 있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1년간 1%포인트 정도만 금리를 완만하게 올려도 국내 증시에서 3년에 걸쳐 최대 440억달러의 국내외 투자금이 순유출될 걸로 추정된다”며 “이는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충격”이라고 말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우리에게도 금리를 올릴 요인이 생기는 건 분명하지만 달러가치의 변동 정도에 따라 즉각 인상의 필요성은 달라질 것”이라며 “다만 지나치게 환율 중심으로 금리문제에 접근하기보다, 내수를 살려 수입을 늘리고 경상흑자도 줄이는 정공법으로 환율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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