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로 타올랐던 국민들의 ‘촛불 혁명’은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탄핵’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권력을 누려온 친박 정치인들 도 덩달아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인 사람이 있다.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며 졸지에 행정부 수반이 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180일 안에 탄핵 여부 심판을 결정할 때까지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를 이끌게 된다. 헌재가 탄핵을 결정하면 대행 체제는 2개월 더 연장된다. 최장 8개월, 어쩌면 그 이상 ‘황교안 체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황 권한대행은 현 정부의 내각 원년멤버로 누구보다 박 대통령의 ‘코드’를 잘 맞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뜻 차기 대권주자를 내세우기 힘든 새누리당의 친박계에서는 대통령 탄핵의 최대 수혜자가 된 그를 앞세워 ‘황교안 대망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실패한 정부의 ‘대리기사’로 운전대를 잡은 그가 보수 진영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공동운명체일 수밖에 없는 그가 태생적 한계를 뛰어 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평들이 지배적이다.
#학도호국단 연대장
“그 때나 지금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 똑같다. 달라진 것이 없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미디어오늘과 가진 인터뷰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 원내대표와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황 권한대행과 경기고 동기 동창(72회)이다.
노 대표와 이 의원은 고교 1학년 때인 1973년 유신선포 1주년을 맞아 반(反)유신 유인물을 뿌리는 등 유신독재 반대에 적극 나섰다. 특히 노 대표는 진보 잡지 ‘사상계’를 읽고 진보인사를 직접 찾아다니는 등 조숙한 정치 행보를 보였다.
반면 학생회를 대신한 학도호국단의 연대장으로 활동한 황 권한대행은 동기들에 따르면 “교련복을 입고 다니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그는 성균관대 법학과에 진학해 1981년 25세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동기들보다 빨리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다. 사시 동기인 박현철 헌법재판소장은 그보다 네 살이 많다.
모범생이었던 황 권한대행의 한 가지 흠결이 있다면 병역이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차례 징병검사를 연기한 그는 1980년 징병 검사 때 만성 담마진(두드러기 질환)이라는 피부병으로 병역 면제 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기 며칠 전에 병무청으로부터 면제 판정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미스터 국가보안법
1983년 청주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황 권한대행은 20여년간 대검 공안1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대구·부산고검장 등을 거치며 대표적인 ‘공안통’이 됐다. 국가보안법과 집회, 시위법 해설서를 집필하며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란 별칭도 얻었다. 그는 2009년 저서 ‘집회시위법 해설서’에 “집시법은 4·19 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해 무질서와 사회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 혁명 직후 제정됐다”며 5·16 쿠데타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을 맡은 특별수사팀장이었던 황 권한대행은 의혹이 제기된 삼성쪽 인사를 전원 불기소 처분하고 자료 제공자였던 이상호 MBC 기자와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해 ‘재벌 봐주기 수사’란 비판을 받았다. 그 바람에 2006년 부실 수사 논란이 일면서 그는 검사장 승진에 실패했고 이듬해 승진 인사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황 권한대행이 다시 기회를 잡은 것은 이명박정부 때였다. 그때 검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사법연수원 동기들 중 가장 빨리 고검장에 올랐다. 하지만 2011년 사법연수원 동기인 한상대 검찰총장이 검찰 최고지휘관이 되면서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장관에서 총리까지
야인 생활을 하던 황 권한대행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2013년 그는현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이때 그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며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황 권한대행은 “증거가 충분치 않다”며 보류했다. 또 혼외자 의혹이 불거진 채 검찰총장에 대해 직접 감찰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감찰한 첫 사례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 청구도 정부대리인 자격으로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하며 통진당 강제해산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지난해 국무총리에 임명되는 과정에서도 천운이 뒤따랐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성완종 사태로 낙마하자 황 권한대행은 어부지리로 총리 후보에 임명됐다. 당시 후보 검증 과정에서 병역 의혹, 아파트 다운계약서, 투기 의혹, 취등록세 탈루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졌으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터져 어영부영 넘어갔다.
하지만 총리가 된 뒤에도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3월 황 총리를 태우기 위한 관용차량이 KTX 서울역 플랫폼까지 들어와 과잉의전 논란이 제기됐고, 지난달 29일 의전 차량 4대가 오송역에서 출발하는 버스정류장을 독차지하고 대기해 말이 많았다.
자질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2월 박 대통령이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황 총리는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던진 “1982년부터 설치한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이 누군지 아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국무총리가 의장”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총리로 알고 있다”라고 답해 빈축을 샀다.
#대통령 놀이
이처럼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그의 행보는 권한대행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황 권한대행은 20~21일 열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 요구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를 수행하는 위중한 상황이어서 (출석을) 고민 중”이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 14일 정세균 국회의장 면담 때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방문이라는 점을 고려해달라”며 대통령에 준하는 의전을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황 권한대행을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하기도 한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14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글에서 “박근혜보다 열 배는 더 훌륭하게 국난을 타개할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이라며 “잘만 하면 국민이 입을 모아 ‘당신이 제 19대 대통령으로 나오면 어때?’라고 할 것 같다”고 썼다.
이런 의견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권한대행의 역할을 얼마나 무리 없이 잘 해내느냐가 관건이다. 2004년 3월부터 63일간 권한대행을 했던 고건 전 국무총리는 이후 지지율이 급증해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지금처럼 권위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행보를 보이면 박 대통령을 끌어내린 민심이 그를 겨눌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7일 열리는 제 8차 집회에서 황 권한대행의 퇴진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 그의 행로가 막중한 책임 만큼이나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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