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록 : 2018.04.09 04:40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한국인은 누구인가” 우리 문화의 다양한 정체성 해부하다

<7>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록 : 2018.04.09 04:40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인본ㆍ공동체주의 창의적 계승” 미래 이어갈 전통의 길 찾다

폐허 속에 새로운 창조 선언하며

전후 세대의 ‘선두주자’로 활약

작가부터 행정가까지 활동 다채

‘한국인의 애달픈 자화상’ 탐구

눈물ㆍ빈곤ㆍ눈치ㆍ권위주의 등

한국문화 통찰 설득력 있는 분석

사회변화에 답하며 새 담론 주조

당파 초월한 인문 자유주의자

가부장적인 ‘낡은 전통’ 배격하고

“인본ㆍ공동체주의 창의적 계승”

미래 이어갈 전통의 길 찾아

/그림 1평론가이자 작가에서 행정가까지, 문학에서 문화와 문명에 이르기까지, 이어령은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길어 올리는 종합적 인문학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30대에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써서 한국인을 놀라게 했다. 40대에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써서 일본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50대에는 올림픽 문화 행사를 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어령(84)에 대한 국문학자 김윤식의 평가다. 지식인 이어령의 정체성을 어느 하나로 특정하기 어렵다. 문학평론가, 문화비평가, 문명이론가, 작가, 행정가 등 다채롭게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문학, 문화, 문명을 포괄하는 ‘종합적 인문학자’가 가장 적절한 이름일 것으로 보인다.

이어령은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스물세 살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무렵인 1956년 기성세대를 비판한 ‘우상의 파괴’를 발표해 새로운 세대의 출발을 알렸다. 1957년에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화전민 지대’를 발표해 전쟁의 폐허 위에 새로운 창조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전후 세대의 선두 주자가 이어령이었다.

이어령이 널리 알려진 것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를 통해서였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이 책은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파헤쳐 지식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0년대엔 ‘신바람 문화’를,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선 남북 분단과 동서 냉전의 극복을 상징하는 ‘벽을 넘어서’를 선보였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선 ‘디지로그(digilog)’와 ‘생명자본주의’ 담론을 펼쳤다. 결코 마르지 않은, 지칠 줄 모르는 인문정신의 소유자가 바로 이어령이다.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그것은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이었다. (...) 황토 흙과 자갈과 그리고 이따금 하얀 질경이꽃들이 피어 있었다. (...) 지프차가 사태진 언덕길을 꺽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는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 누렇게 들뜬 검버섯의 그 얼굴, 공포와 당혹스런 표정, 마치 가축처럼 둔한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쫓겨갔던 그 뒷모습 (...)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

다소 긴 인용이지만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서장이다. 1960년대 경기 양주군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내겐 생생히 상상되는 장면이다. 이어령은 묻는다. 한국인은 누구인가, 우리 문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 체험의 원형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우리의 피부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 다시 말해 한국 문화를 젊은 이어령은 예리하게 관찰하고 설득력 있게 해석한다.

1956년 5월 6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이어령의 '우상의 파괴'(지면 오른쪽 상단). 스물 세 살의 나이로 발표한 이 글로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어령은 이후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담론들을 공급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화에는 이중적인 뜻이 담겨 있다. 한 집단이 갖는 공동의 생활양식이 그 하나라면, 삶의 이유를 제공하는 의미체계가 다른 하나다. 이러한 문화는 앞선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전승되고, 사회의 ‘심층구조’로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근대 이후 우리 문화와 미(美)의 본질은 인문학의 주요 관심사의 하나였다. 미술사학자 고유섭은 우리 미의 본질을 ‘무기교의 기교’로 봤다. 국문학자 조윤제는 우리 문화의 특질을 ‘은근과 끈기’에서 찾았다. 또, 우리 문화의 특징을 ‘흥 또는 한’으로 파악한 이들도 있었다.

이어령이 독해하는 우리 문화의 코드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눈물 문화, 빈곤 문화, 권위주의 문화, 눈치 문화, 끼리끼리 문화 등이 그것들이다. 젊은 나이였음에도 그는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바탕한 비교와 비유, 통찰을 통해 한국 문화의 다양한 코드들을 해부한다. 고등학생 시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이어령의 박람강기(博覽强記)에 경탄해마지 않았던 기억이 여전히 새롭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우리 문화의 예찬보다는 비판에 기울어져 있다. 한국인의 애달픈 자화상인 셈이다. 이러한 접근을 염려해서인지 이어령은 후기에서 “부정적인 면에서만 한국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먼저 아파해야 된다는 것, 그 아픔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 담긴 메시지라고 적어둔다.

인문적 자유주의자로서의 삶

2002년에 나온 신판은 부록으로 ‘흙 속에 그 후 40년’이란 긴 인터뷰를 싣고 있다. 여기서 이어령은 우리 문화의 특질을 새롭게 열리고 있는 정보사회에 걸맞은 경향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초판에선 윷놀이에 당파의 비극성이 담겨 있다고 봤다면, 신판 인터뷰에선 윷놀이의 우연성과 의외성, 애매성에서 우리 특유의 신바람 문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주장하듯, 문화에는 우열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령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나가는 문턱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을 주목하고 그 부정적 유산의 극복을 계몽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250여 만부 이상 팔린 까닭은 이어령의 재치 있고 날카로운 통찰에 공감했기 때문일 터다.

예를 들어, 서구 사회를 ‘버튼 사회’, 우리 사회를 ‘끈의 사회’로 비교한 이어령의 분석은 여전히 음미할 만하다. “끈은 덩굴처럼 무엇엔가 의지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 몸을 타인에게 속박시켜야 한다. 끈은 끊어질 때 멸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이 갖는 비극성”이라는 주장은, 혈연과 지연, 학연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돌아볼 때, 21세기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갖는다.

1990년 처음 단독부처가 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에 오른 이어령(사진 오른쪽). 당시 국무총리 강영훈과 현판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후 내 시선을 끈 이어령의 저작은 ‘디지로그’(2002)와 ‘생명이 자본이다’(2013)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시킨 말이다. 이어령은 정감 있는 디지털 문화를 창출해 우리 사회가 세계 사회의 새로운 리더가 되자고 제안한다. ‘생명이 자본이다’는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성찰을 겨냥한다. 화폐와 물질이 결정하던 자본주의를 넘어서 생명과 사랑을 존중하는 자본주의를 열어 가자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이렇듯 이어령은 사회 변화에 호흡하면서 새로운 담론을 쉼 없이 주조해 왔다.

이어령의 삶과 학문에 비판이 없지는 않았다. 문화 분석의 깊이에 의문을 표하는 이도 있었고, 양지에 머물러온 삶의 태도를 곱게 보지 않은 이도 있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이어령은 구속과 당파를 모두 거부했다. 그의 정체성은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전통과 현대, 탈현대를 모두 아우르는 ‘인문적 자유주의’를 지향했다. 인문적 자유주의는 자유를 선택한 만큼 고독을 대가로 요구한다. 이 자유의 고독 속에서 그가 펼쳐온 담론들은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의 소중한 자산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통의 미래

초기 이어령은 우리 전통을 대체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후기 이어령은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탐구했다. 전통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전통을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것도 소망스럽지 않다. 현재는 과거라는 전통 위에 존재하며, 미래 또한 현재라는 전통 위에서 시작한다. 역사란 전통과 현대가 서로 충돌하고 흡수하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이어령의 저작들

사회학자 임희섭은 ‘전통문화’와 ‘문화전통’을 구분한 바 있다. 전통문화가 과거 전통사회의 문화를 말한다면, 문화전통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축적된, 현재 사회 환경 속에서도 유지되는 문화양식을 말한다.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권위주의와 가부장주의가 배격해야 할 전통문화라면, 인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창의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문화전통이다.

새로운 100년의 문턱 위에 선 현재,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동도서기(東道西器)인가, 서도서기(西道西器)인가. 서양의 기술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우리 문화를 지탱할 가치가 ‘동양의 마음’인가, ‘서양의 마음’인가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0년이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시대였다면, 새로운 100년은 낡은 전통과 과감히 결별하고 지속가능한 전통을 창의적으로 수용해야 할 시대다. 인류의 보편 가치인 개인주의·민주주의와 우리 전통 안에 놓인 인본주의·공동체주의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결합하고 융합할 것인가는 우리 문화의 미래에서 중대한 과제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최인훈의 ‘광장’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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