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 대통령 요청으로 설치
文정부 출범 맞물려 뒷말 무성
정부 “계약 연장 출연금 이견”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미국 수도 워싱턴DC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이 10년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요청으로 설치한 ‘한국실’을 폐쇄키로 결정했다. 한미 관계가 재조정을 모색하는 국면에서 나온 조치여서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지만, 전시 공간의 비효율성과 계약 재연장에 필요한 출연금을 둘러싼 스미소니언 측과의 이견에 따른 결과라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 관계자는 “스미소니언 측이 자연사박물관 2층, 92.9㎡ 공간에 설치한 한국실에 대한 최종 폐쇄방침을 통보해 왔으며, 우리 정부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한국실은 2003년 노 전 대통령 방미 당시 권 여사가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한국실 설치를 제의해 이후 3년간의 준비 끝에 2007년 6월 개관했다.
스미소니언 측은 한국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125만달러(15억원)을 받고 2층 복도 일부를 10년 동안 전시 공간으로 제공했다. 권 여사는 2007년 개관 당시 직접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스미소니언 한국실은 이후 지난 10년간 자연사박물관에 설치된 유일한 ‘국가관’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워싱턴을 찾는 한국 방문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협소한 공간과 수준 낮은 전시물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이미지를 흐린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스미소니언 측도 자연사박물관의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한국 측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2년전부터 스미소니언 측이 내부적으로는 2017년 폐쇄 방침을 정했으며, 명분을 쌓으려는 듯 한국 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재연장 조건을 내세웠다”고 말했다. 스미소니언 측은 재연장 조건의 하나로 한국 측에 3년마다 150만달러 가량의 기금 출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한국실의 운영실태를 감안하면 스미소니언 측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며 “복원 공사중인 구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식으로 미묘한 시기에 이뤄졌지만 한국실 폐쇄는 탄핵 사태 이전부터 논의되어 온 것”이라며 “한국에서의 정권 교체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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