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무대에서 잔뼈 굵은
완성형 싱어송라이터들 등장
개성 있는 목소리와 스타일 갖춰
판에 박힌 기성 가요제 긴장해야
Mnet ‘슈퍼스타K 6’의 최종 라운드에 오른 곽진언과 김필을 보면 올해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비긴 어게인’이 떠오른다. ‘비긴 어게인’은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그녀의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가 사랑과 이별을 노래로 엮어낸 영화다. 더불어 영화에는 스타 음반 프로듀서였던 댄(마크 러팔로)이 작은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하는 그레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최고의 음반을 만드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한 편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자신만의 음악과 감성으로 노래하는 그레타에게 필요한 건 그 음악을 좀 더 효과적으로 프로듀싱해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누군가의 손길이었다. 그래서 댄은 뉴욕의 거리로 나가 야외에서 녹음하는 실험(녹음실을 빌릴 돈이 없어서지만)을 한다. 하지만 이 야외 녹음은 거리의 소음까지 하나의 음악으로 바꿔내는 의외의 효과를 거둔다. 그레타의 음악은 댄의 프로듀싱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얻었고 그것이 대중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이번 ‘슈퍼스타K 6’가 발굴한 곽진언과 김필은 그 음악적 스타일이 ‘비긴 어게인’에 나오는 그레타와 데이브를 각각 닮아있다. 낮게 읊조리는 곽진언이 그레타 같은 느낌을 준다면, 소름 돋는 고음을 선사하는 ‘고드름 보컬’ 김필은 데이브 즉 마룬파이브의 보컬 애덤 리바인을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건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서기 전부터 이미 완성형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점이다.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들처럼 이들 역시 홍대의 라이브 무대에서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하며 잔뼈가 굵었다.
곽진언이 우승한 이후 유튜브에서는 그가 라이브 카페에서 통기타 하나를 들고 노래하는 과거의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동영상 속의 곽진언은 ‘슈퍼스타K 6’ 무대와 같은 목소리와 스타일로 노래하고 있다. 오디션에서 우승했지만 그 모습은 1년 전 홍대 앞 라이브 카페에 섰던 것과 다를 게 없다. 곽진언과 김필은 이미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에 올랐을 뿐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대중이 인디 뮤지션의 음악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23일 첫 방송한 SBS ‘K팝스타 4’에서는 이진아의 ‘시간아 천천히’라는 자작곡이 화제가 됐다. 그녀 역시 몇 년 전부터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려온 싱어송라이터다. ‘시간아 천천히’가 담긴 1집 앨범을 이미 발표했던 이진아는 그 음반이 고작 50장 정도 나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시간아 천천히’가 방송에 나가자마자 음원 차트 10위권에 올라갔다. 같은 음악이라도 방송을 타면 이렇듯 결과가 달라진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수 지망생을 가르치는 무대에서 완성된 싱어송라이터의 이야기를 담는 무대로 바뀌고 있다. 가창력? 그런 기준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대중은 개성 있는 목소리와 스타일로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음악에 매료되고 있다. 만들어진 가수로 승부하던 기성 가요계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대형기획사와 방송사가 공조해 양산한, 판에 박힌 음악에 지친 대중에게는 작은 숨통 하나가 트인 셈이다. 대중은 이제 이들이 써나가는 ‘비긴 어게인’을 기대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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