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폐쇄적 인사·통치 시스템 등 거론 않은 채 "의혹은 사실 아니다"
"3인방은 일개 비서관" 교체론 일축
2인자 두지 않는 리더십 스타일 "사령탑 부재가 되레 논란 키워" 지적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 유출 논란과 관련해 그간 내놓은 발언들의 키워드는 '찌라시'와 '애국심'이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국정을 농단한다는 의혹을 허무맹랑한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수준의 비방 공세로 보고 있다는 점을 7일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도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은 또 "오직 나라가 잘 되게 하는…" "일생을 나라 걱정을 하며 살았다" 등의 언급으로 ‘사심 없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왜 근거 없이 흔드느냐’는 불만을 드러냈다.
'비선실세 의혹 본질 벗어난 발언' 논란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비선실세 의혹의 뿌리가 된 청와대의 폐쇄적 인사ㆍ통치 시스템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해당 문건이 청와대 내부에서 작성되고 유출된 배경, 현정권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연이은 폭로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직격탄을 날린 구조적 이유 등에 대한 문제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박 대통령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찌라시'라는 용어를 공개적으로 입에 올린 것 자체가 박 대통령의 격앙된 심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7일 오찬 모두발언과 마무리발언에서 '나라'라는 단어는 15번, '대한민국'은 3번, '국민'은 19번 씩 사용했다. 박 대통령은 2일 통일준비위 오찬에서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라고 한 데 이어 7일 "우리 모두 언젠가는 세상을 떠야 하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해야 한다. 저는 그 목적 하나로 살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언급도 내놓았다. 일련의 대통령 언급은 오직 원칙과 애국심에 따라 통치하고 있는 청와대를 흔들지 말라는 경고와 이번 사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비장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일파만파 번지는 논란을 조기 수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논란 수습할 '컨트롤 타워'가 없다
박 대통령은 28일 세계일보의 문건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두 차례나 발언을 통해 전면에 나서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권력 암투는 없다'는 비서관 3인방과 정윤회씨, 박지만 EG회장 측의 주장에 전폭적 신뢰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또 7일 비서관 3인방이 문고리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에 대해 "그들을 권력자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면서 "그들은 나의 일개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언급은 도마에 오른 3인방의 언행이 자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여서 여권 일각에서 제기한 3인방 교체론을 일축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이번 의혹과 관련해 직접 나선 것은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은 측근들이 양친과 가족을 배신했던 비극적 개인사로 인해 주변 정치인 등을 쉽게 믿지 않고 비서관 3인방 등 오랜 기간 신뢰를 쌓은 소수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실무를 비밀리에 처리하는 스타일을 유지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배신 트라우마를 가진 박 대통령이 유진룡 전 장관, 조응천 전 비서관 등에게 또 다시 배신을 당한 모양새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다양한 시각을 담은 정보와 여론을 전하고, 권력 핵심부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정리할 무게 있는 인사의 존재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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