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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2월 7일] 이웃집, 이웃사람

입력
2014.02.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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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소음을 둘러싼 이웃끼리의 갈등이 잦다. 이웃과 아래위나 옆으로 20㎝ 두께의 벽만 두고 살아야 하는 한국 도시인에는 숙명적이다. 그러나 이런 숙명론도 선입견이 빚은 기대 과잉의 결과이기 쉽다. 말귀가 통하지 않아 행동의 변화는 눈곱만치도 기대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스스로의 예민한 귀 탓으로 돌리기만 해도 갈등은 싹트지 않는다. '이웃사촌'이라는 수사(修辭) 대신 이웃은 더러는 정겨워도 대개는 성가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웃끼리의 갈등은 많이 덜 수 있다.

이웃나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선린(善隣)이니,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니 하는 말의 막연한 친근감과 현실 세계의 구체적 실상은 실로 하늘과 땅 차이다. 역사상 이웃나라는 늘 긴장과 갈등, 무력충돌에 시달려왔다. 다만 현대 사회 들어 이런 본연의 대결을 감추어 가리거나 방향을 바꾸어 발산함으로써 눈앞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도구적 지혜가 발달해 '선린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인식과 행동의 일치를 으뜸으로 치는 유교 전통의 가치관에 비추면 속마음과 겉모습을 나누는 게 못마땅할 수 있다. 진심을 담지 못한 겉껍데기 행동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예(禮)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집안이나 동네 어른에게 열심히 인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손한 마음이 들듯, 습관화한 행동에는 진심이 깃드는 법이다. 하물며 의전으로 시작해 의전으로 끝난다는 말까지 있는 외교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의 냉각을 푸는 데도 이런 형식 우선의 자세가 긴요하다. 한동안 열심히 박근혜 대통령에게 우선 만나자, 만나서 얘기라도 해보자고 손짓을 하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제는 고개를 돌렸다.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뤘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카드까지 꺼낸 마당이다. 미국의 만류도 소용이 없다. 이대로라면 일본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고, 한국의 태도 변화는 불가능하리라는 인식이 각각 한일 양국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이런 감정적 지레짐작과는 달리 한일 관계의 그늘은 이미 짙다. 대표적인 게 일본 관광객의 급감이다. 재작년 352만 명에 달했던 일본 관광객은 지난해에는 275만 명으로 21.9%나 줄었다. 항공ㆍ호텔 업계는 물론이고 관광특수를 누려온 각종 사업자들의 주름이 깊다. 엔저 등의 영향도 크겠지만, 일본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악화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3ㆍ11 대지진 이후 완연했던 일본의 직접투자나 기술제공, 부품ㆍ소재 조달 흐름도 시들해졌다.

일본과의 불통이 이 이상 길어지다가는 소통 재개의 길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일본이 돌연 전향적 자세를 보여 위안부 문제 등의 해결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공을 일본에 넘긴 박근혜 정부가 먼저 해결책을 들고 나서기도 어렵다. 따라서 우선은 양국 정부가 물밑으로라도 더 이상의 갈등 확대만은 막자고 합의하는 것이 급하다. 그를 토대로 양국 정상의 만남을 위한 형식적 유감 표명을 준비할 수 있다. 외교는 단 한번의 소통으로 특별한 국익을 관철하는 수단일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손실 최소화와 실익 증대를 겨냥할 수 있다.

물론 몇 가지 원칙은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조건의 충족 없는 정상 대화는 없다는 고식적 원칙이 아니라 화해를 겨냥한 행동원리 말이다. 자연인 개인과 일본 정부 수반으로서의 아베 총리, 안보ㆍ경제 문제와 역사 문제는 따로 떼어 보고, 모든 현안을 뒤섞는 대신 위안부 문제 등 핵심 현안 하나에 집중해서 일본의 성의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그에 대한 노력을 평가하겠다는 자세 정도면 된다.

무엇이든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또한 상황이 엄중할수록 타개 노력이 빛난다. 이웃집 가장끼리 등을 돌렸더라도 짐짓 겸연쩍은 얼굴로라도 마주 보아야 양쪽 집안 식구들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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