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의원 162명 전원이 16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 촉구 결의안’을 냈다. 하루 전에는 역사학과 및 역사교육학과 교수 561명이 국정교과서 폐기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한국사학회와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역사 및 교사단체들도 최근 국정화 중단을 촉구했다. 보수 성향의 한국교육단체총연합회마저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섰으니 국정화 철회 요구가 얼마나 거센지 알 만하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예정대로 28일 현장 공개본을 내고 내년 신학기부터 전국의 중고교에 배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신뢰를 잃은 정부가 국정화를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뜻은 외면하고 박근혜 대통령 생각에만 따르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미래와 통일에 대비하고 자라나는 세대가 확고한 국가관을 갖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고생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독재와 친일행위 등 역사의 오점마저 미화할 우려를 낳았다. 무엇보다도 국가 권력을 동원해 교과서를 단일화하고 중고생에게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교과서 국정화에는 최순실씨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국정화 결정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김상률씨였다. 그는 최순실씨와 더불어 ‘국정 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차은택씨의 외삼촌이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최씨의 영향을 받은 듯한 말을 썼다.
국민은 현재 국정교과서를 ‘최순실표 역사교과서’ ‘순실왕조실록’으로 규정하고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중고생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가 국정교과서 철회를 요구했다. 국정교과서는 그 내용에 상관없이 이미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를 알고도 국정화를 고집하면 국민과 맞서겠다는 것일 뿐이다. 억지로 국정교과서를 제작해 배포한들 학생과 교사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미련을 버리는 대신 내년 1학기 역사교육에 어려움이 없도록 준비를 서두르는 게 낫다.
더불어 시중의 의혹처럼 최순실씨가 국정화에 개입했는지도 분명히 가려야 한다. 만약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의 뜻이라면 무조건 추종해 국정화를 주도한 공무원과 학계 인사들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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