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종소리가 울리는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한번쯤 힘든 이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늘 우리 곁에 있었는데 유독 겨울에 더 생각나는 이유는 혹독한 날씨 탓이겠지요. 이웃과의 나눔에 대해 생각하는 계절에 함께 읽고 나눌 수 있는 책을 추천하라면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 내면의 궁핍과 온정을 잘 표현한 이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디킨스는 산업화로 인해 부의 불균형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해군 하급공무원이어서 늘 생계가 어려웠는데 빚까지 지게 돼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런 환경 탓에 디킨스는 초등학교마저 중퇴하고 열두 살부터 구두약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형편에도 자기 개발을 늦추지 않아 마침내 작가가 됩니다. 이런 삶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기에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등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뒤틀리다’라는 뜻으로 사람의 이름으로 붙이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12년 삶을 이보다 잘 표현한 말도 없을 겁니다. 올리버의 인생역정은 태생부터 시작되는데요. 그의 어머니는 길을 헤매다 빈민시설(구빈원)에서 올리버를 낳고 죽습니다. 올리버는 열악한 환경에서 굶주림과 구박을 견디며 자랍니다. 죽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다가 매를 맞고 장의사에게 팔려가기도 합니다. 장의사 집에서도 함께 일하는 노아의 괴롭힘에 못 이겨 거리로 뛰쳐나온 그는 런던으로 가던 길에 ‘미꾸라지’란 별명의 잭을 만나 빈민굴에 있는 악당 두목 페긴의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은 집 없는 소년들을 소매치기로 키우는 도둑 소굴이었습니다.
행동주의 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은 외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존 왓슨은 자신에게 건강한 유아 12명과 그들을 각기 자라게 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해 준다면 의사나 변호사부터 거지나 도둑까지 키워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올리버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극한이었습니다. 천애고아로 하루하루 먹거리를 구걸하고 누울 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미꾸라지’ 잭 역시 빈민굴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페긴이 시키는 대로 도둑질을 합니다. 심지어 소매치기로 얻은 수입과 행위에 희열을 느끼고 큰 부자가 될 꿈까지 꿉니다.
하지만 인간은 환경의 지배만 받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올리버는 보여줍니다. 그는 “듣기 싫어. 난 그런 짓은 할 수 없단 말이야”라며 저항하죠. 또 자신의 존재를 귀히 여기고 다른 사람과의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의 심성을 환경결정론으로만 본다면 불우한 아이들의 탈선을 바로 잡을 길은 영영 멀어질 겁니다. 엇나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거나 강압적인 처벌로 누를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타고난 좋은 가정이 없다면 국가와 사회가 그 역할을 담당하면 됩니다. 올리버는 멋모르고 잭과 찰리를 따라 나섰다 노신사 브라운로의 손수건을 훔친 도둑으로 몰립니다. 올리버에게 3개월간 중노동을 시켜야 한다는 성급한 경찰 서장과는 달리 브라운로 씨는 관대한 처분을 요청하죠. 그리고 오갈 데 없는 올리버를 데려다 보살피기도 합니다. 짧게나마 저버릴 수 없는 사랑을 받은 만큼 올리버도 주변 사람들과의 신의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심부름을 갔다가 다시 납치되어 도둑 소굴로 끌려왔을 때에도 브라운로 씨와의 약속을 못 지킨 것에 괴로워합니다.
해마다 아동 범죄율과 재범률이 늘고 있습니다. 소년법상 촉법소년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선처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재범이 느는 이유는 이들이 돌아갈 따뜻한 가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독후활동으로 ‘소외된 사람에게 베푼 온정과 관심이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올리버의 삶이 행복해지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 중에 닮고 싶은 인물을 선정해 편지를 써봅시다. 구빈원 친구 디크는 올리버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포옹과 인사를 했습니다. 런던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는 올리버를 자기 손자와 같이 생각하고 돈을 챙겨주었죠. 브라운로는 소매치기와 강도 혐의로 처벌을 받아야 할 올리버를 구해주었고 로즈번 의사 선생님은 올리버를 괴롭히는 악당을 잡기 위해 추적했습니다.
지난 연말과 함께 구세군 종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겨울은 길고 여전히 어려운 이웃들은 많은데 말이죠. 더불어 우리의 온정도 식어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이번 독서를 계기로 ‘나눔’을 되새기며 마음 가는 곳에 지속적인 온정과 관심을 쏟길 바랍니다. 작지만 우리가 내밀어준 도움은 혼자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려고 애 쓰는 또 다른 올리버에게 분명 희망의 끈이 될 것입니다.
김은미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